중·고생 60여 명, 부모와 함께 ‘1일 의대생’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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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태석 신부처럼 훌륭한 의사가 될 거에요.’ ‘정신과 의사가 돼 떼쓰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돕고 싶어요.’ ‘의사가 진로에 맞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중앙일보 MY STUDY 가 순천향대 부천병원과 함께 19~20일에 진행한 ‘미래 의대생을 위한 1일 병원 체험’이벤트에 응모한 중·고생들의 사연이다. 200여 명의 신청자 중 선발된 60여 명의 학생들이 1일 의대생이 돼 의사라는 꿈에 한 발 더 다가갔다.

뚜렷한 목표 잡고 발전모습 보여야

 19일 오전 9시 경기도 순천향대 부천병원 순의홀. 중학생 30여 명과 학부모 3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의사가 되고 싶어 참가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의사가 적성에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김재희(서울 석촌중 3)군도 의사가 되기위해 자율형사립고에 진학할지, 철학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외고에 진학할지 고민이 생겨 참가를 결심했다. 김군은 “내 적성을 확실히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홍대식 병원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는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와 종양혈액내과 박성규 교수의 강연으로 이어졌다. ‘의사가 되는 길’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박 교수는 “의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한 직업이 아니다”라며 “소명의식을 갖고 자기 자신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멘토와의 만남’이 진행됐다. 순천향대 의과대학 1학년인 강은명·도라윤씨가 1일 멘토로 나섰다. 두 사람은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해 설명한 뒤 교과 부문과 비교과 부문으로 나눠 의대 진학에 필요한 항목을 소개했다. 강씨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도씨는 “입학사정관 전형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주도학습’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며 “공부뿐 아니라 모든 활동에 자율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귀띔했다. 이날 자녀와 동행한 학부모들은 별도로 마련된 교육·건강 강좌를 들었다.

동물실험으로 장기구조 살펴

 본격적인 체험은 7~8명씩 4개의 조로 나눠 진행됐다. 진단검사의학과에서 혈액·소변으로 간기능·빈혈 등을 검사하는 과정을 살핀 뒤 조별로 실험용 쥐를 해부하기 위해 동물실험실로 이동했다. 실험대 위에 마취된 흰쥐 두 마리가 있었다. 보통 쥐보다 2배 정도 큰 크기에 흥미로워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실험실에 들어설 때 당당하던 모습과 달리 뒷걸음치는 학생도 있었다. 임상의학연구소 이은주 연구원은 “동물 실험을 할 때는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실험에 쓰이는 모든 동물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진행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강은서(서울 영훈국제중 3)양이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해부를 시작했다. 쥐의 네 발을 핀으로 고정한 뒤 배를 갈랐다. 내피(內皮)를 자르자 소장과 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해부에 참가한 학생들은 심장을 만져본 뒤 횡경막을 잘라 숨어있는 폐를 찾아냈다. 장기를 만져본 아이들은 “간은 촉촉하고 말랑말랑하고, 심장은 딱딱하다”라고 설명했다. 표정이 내내 어둡던 박지수(서울 역삼중 2)양은 “불쌍하게 왜 죽이지 않고 마취한 상태에서 실험을 하냐”고 물었다. 김희정 연구원은 “죽은 상태에서는 몸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실험을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강양은 “이번 체험을 통해 내가 의사로서 자질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실험실에 들어설 때만해도 해부를 하지 못할까봐 걱정을 했었다는 것이다. “쥐도 사람과 똑같은 장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생각만큼 무섭고 징그럽지도 않았고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요.”
 
수술실 체험으로 수술 과정 지켜봐

 동물해부 이후에는 심폐소생술 강좌가 이어졌다.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의 설명에 따라 흉부압박, 인공호흡, 자동 제세동기 사용법 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김 교수는 “얼마 전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의 신영록 선수도 심폐소생술 덕분에 살 수 있었다”며 “앞으로 심장이 멈춰 쓰러진 사람을 보면 주저하지 말고 오늘 배운 방법을 실시하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심폐소생술은 빠른 처치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심장이 멈춘 뒤 5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나면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앞에 놓인 마네킹에 30회씩 흉부압박을 실시하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인공호흡을 했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익힌다는 생각에 모두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다음에 방문한 의학시뮬레이션센터에서는 정용선 코디네이터가 학생들을 반겼다. “의학시뮬레이션센터는 의예과 3·4학년들이 인턴십 활동을 하기 전에 실습하는 곳이에요. 의사면허를 따려면 필기시험뿐 아니라 실기시험도 치러야 하거든요.” 학생들은 진료기구·실습도구가 갖춰진 10개의 방을 둘러봤다. 청진기로 심·폐음 듣기, 채혈, 중이염 관찰 등의 체험을 했다.

 마지막 체험장은 학생들이 기다리던 수술실이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상·하의를 모두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헤어캡과 마스크를 착용했다. 학생들은 “진짜 의사가 된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이정석 교수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10여 개의 수술실 안에서는 자궁부속기 절제술, 머리 부위를 절개하는 뇌수술, 무릎 밑을 절단하는 정형외과 수술, 내시경을 이용한 이비인후과 수술 등 다양한 수술이 쉴 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수술대 바로 앞까지 다가가 진행과정을 살폈다. 수술실에서 나온 뒤 학생들은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혜원(경기도 평촌중 3)양은 “수술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어 신기하다”며 “좀 두렵고 무서웠지만 병을 치료한다고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은서양은 “동물실험까지는 괜찮았는데,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보고 너무 놀랐다”며 “외과보다는 내과 쪽으로 진로를 정해야겠다”고 털어놨다.

 이번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의사라는 막연한 꿈을 구체적인 목표로 만들었다. 김동주(경기도 대화중 3)양은 “지금까지는 그냥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오늘 체험을 통해 제진로를 확고히 하게 됐다”며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체력을 키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설명] ‘1일 병원 체험’ 참가자들이 수술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체험에서는 실험용 쥐 해부와 심폐소생술 실습도 진행됐다. (사진 왼쪽부터)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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