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사상도 당성도 묻지 말라” … 덩샤오핑 ‘863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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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계획은 첨단기술 연구·개발로 독자적인 혁신 능력을 높이는 걸 목표로 한다

- 1986년 3월 덩샤오핑

1986년 3월 어느 날 한 권의 보고서가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의 책상에 올라갔다. 중국의 핵 보유를 실현한 왕간창(王淦昌·핵물리학)과 왕다헝(王大珩·광학)·양자츠(楊嘉墀·자동제어학)·천팡윈(陳芳允·전자학) 4명의 원로 과학자 이름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첨단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건의와 함께 집중 육성해야 할 전략적 과학 분야가 적혀 있었다. 4인의 과학자는 ‘이 사안은 신속히 결정해야 하며 한순간도 미뤄선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중국판(版) ‘스푸트니크의 순간’이었다. 스푸트니크(1957년 소련이 발사에 성공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에 경악한 미국은 곧바로 항공우주국(NASA)을 세워 세계 최고의 우주항공산업을 일으켰다.

 덩은 주저 없이 밀어붙였다. 과교흥국(科敎興國·과학과 교육으로 국가를 발전시킨다) 전략이었다. 과학기술의 지원과 육성에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 극대화’라는 경제 원리를 적용했다. 그해 11월 국가적 역량을 집중 투입하는 첨단기술 지원사업 ‘863계획’이 착수됐다.

 863계획에 따라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자금과 인재 지원이 쏟아졌다. 해외의 고급 인재들도 속속 귀국했다. 세계적 수준의 과학기술 확보는 덩이 주창한 4대 현대화(농업·공업·과학기술·국방)의 최우선 과제였다.

 ‘사상도 당성(黨性)도 묻지 않는다. 과학자는 무조건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과학자 우대정책이 뒤따랐다. 80년대 중반부터 인재들을 뽑아 미국·영국 등으로 유학을 보냈고 이들이 귀국하면 귀하게 썼다.

 과학 인재를 중시하는 덩의 소신은 후임 지도자들도 이어받았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은 2008년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세워 해외의 스타 과학자 등 고급 인력 1000명을 영입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중국 발전에 필요한 과학·기술·금융 등의 분야에서 최우수 두뇌를 대거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원로 과학자들에 대한 깍듯한 우대문화도 전통이 되고 있다.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는 춘절(설날)과 연말연시, 한여름에 원로 과학자들의 집을 찾아 문안하고 있다. ‘중국 수소폭탄의 아버지’ 로 존경받는 주광야(朱光亞)가 병석에 눕자 문병을 했고 ‘중국 원자탄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첸싼창(錢三强)의 미망인을 찾아 위로했다.

 중국 제조업의 기술 수준은 여전히 선진 공업국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국가적 과학 지원정책에 힘입어 우주항공·해양개발 등 첨단 과학기술에서는 주요 2개국(G2·미국과 중국) 급으로 성장했다. 덩의 야심 찬 계획이 ‘육해공(陸海空)’을 망라하며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앞서 가고 있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중국은 맹추격 중이다. 중국은 우주정거장 건설과 중국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인 베이더우(北斗) 시스템 구축, 달·화성 탐사 등 우주개발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달 탐사위성 창어(嫦娥) 1·2호 발사에 성공하고,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달 착륙을 계획하는 등 눈부신 업적을 쌓아 가고 있다.

 중국은 지난 21일 태평양에서 유인 잠수정 ‘자오룽(蛟龍·바닷속에 산다는 전설상의 용)호’의 1차 시험 잠수에서 수면 아래 4027m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둘째로 빠른 수퍼컴퓨터 톈허(天河)1호도 개발했다.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한 모듈위성 톈궁(天宮) 1호와 우주에서 도킹할 우주선 선저우(神舟) 8호 등도 중국 첨단 과학기술의 위상을 입증한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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