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와일드카드, 이창호냐 이세돌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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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제13회 농심배 국내 예선전에서 이세돌 9단에 이어 이창호 9단마저 탈락했다. 대표선수는 5명. 랭킹 파괴가 극심한 가운데 현재 원성진 9단, 김지석 7단, 강유택 4단까지 3명이 지옥의 레이스를 통과했고 다음 주 치러질 A조 결승(이영구 8단-안국현 2단)에서 또 한 명의 대표가 나온다. 마지막 한 명은 주최 측(농심)이 지명권을 행사하는 ‘와일드 카드’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올해의 와일드 카드는 누구일까. 이창호일까. 이세돌일까.

 ◆랭킹이 무너진 예선전=6연승을 거둬야 대표가 되는 예선전은 그 자체로 이변을 예고한다. 1회전에서 랭킹 2위 최철한 9단은 29위 박승화 5단에게 져 탈락했다. 예선 2회전에선 4위의 허영호 9단이 16위의 김승재 4단에게 졌고 3회전에선 부동의 1위 이세돌 9단이 47위의 무명 기사 이형진 2단에게 져 탈락했다. 5회전에서 8위의 이창호 9단은 11위의 이영구 8단에게 졌다. 랭킹 89위의 김영삼 8단은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주인공. 5위의 강동윤 9단, 12위의 윤준상 8단을 격파하며 결승까지 올랐으나 강유택에게 석패했다. 15위의 백홍석 7단을 꺾으며 노장의 투혼을 보여준 조훈현 9단(36위)도 결승에서 김지석에게 져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창호냐, 이세돌이냐=와일드 카드로 두 사람 중 한 명을 뽑는 이 문제는 꽤 복잡 미묘하다. 우선 ‘이창호’라는 이름 석 자는 오랜 세월 농심배의 상징이었다. 한국팀 마지막 주자로 나서 8번이나 완벽한 수문장 역할을 해낸 이창호로 인해 중국은 지난 세월 번번이 분루를 삼켜야 했 다. 그래서 농심 측은 이창호 9단이 예선에서 탈락하면 와일드 카드로 반드시 되살려냈다. 지난 4년간 이창호는 연속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4번 모두 와일드 카드의 주인공이 됐다.

 이세돌 9단은 이미 8년 전인 2003년 농심배 불참을 선언하며 “와일드 카드에 대한 선발 원칙이 모호하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이창호는 2002∼2005년 4년간 예선에 참가하지 않고 미리 시드를 받은 유일한 기사였다. 2006년부터 이창호도 예선에 참가하게 됐고 탈락하면 와일드 카드로 뽑는 일이 반복됐다. 농심 측은 “이창호 9단 없는 농심배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올해 이세돌은 세계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최강자의 명성을 더욱 높였고 이창호는 예전의 이창호가 아니다. 예선 탈락을 거듭하며 대표선수로 단 두 번만 뽑혔던 이세돌. 이제 농심 측은 이창호 대신 이세돌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부동의 1위 이세돌 9단과 농심배 신화를 쓴 이창호 9단. 농심의 선택에 바둑계의 촉각이 집중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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