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한대수 “세월 다 어디 갔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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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셋의 한대수(오른쪽)와 마흔하나의 이승열이 함께 노래했다. 각기 다른 음색이 모여 경쾌한 리듬의 ‘그들의 블루스’를 완성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대수(63)가 돌아왔다. 수 년간 노래하는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2006년 열한 번째 정규앨범 ‘욕망’을 낸 뒤로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던 터였다. 그의 말마따나 “노래는 늘 하고 싶었다”지만, 실은 그럴 형편이 못 됐다. 스물두 살 연하 아내는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고, 그 와중에 늦둥이 딸 양호(4)도 태어났다. 노래를 안 했다기보다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그랬던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것도 까마득한 후배 싱어 송라이터 이승열(41)과 함께다. 이승열의 싱글 ‘그들의 블루스’에 참여했다. 한대수가 다른 가수의 노래에 목소리를 얹은 건 데뷔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그들의 블루스’는 경쾌한 블루스 리듬이 인상적인 노래다. 그러나 음악이 단단하다고 해서 한대수가 마이크를 다시 잡진 않았을 게다. 해답은 노랫말에 있다. 마흔한 살 이승열이 지은 노랫말에 담긴 ‘인생론’이 예순세 살 한대수를 끌어당겼다.

 예컨대 이런 노랫말이다. ‘벌고 벌고 벌어 쓰고 쓰고 또 쓴다/밤 잠 잃은 네 곁엔 눈물 젖은 배게잇뿐/사십오도 경사 굴러 떨어지는 돌 두시쯤/그러다가 오십 그러다 오십 되는 거야….’

 “다른 가수와 함께 노래하는 건 처음이에요. 좀 까다롭지 내가, 으하하하. 무엇보다 곡이 좋아야 하는데 승열씨 곡은 듣자마자 반해버렸죠.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인생을 담은 노랫말도 매력적이고. 특히 ‘그러다 오십되는 거야’라는 대목이 확 와 닿던데요. ‘젊은이들아, 시간 낭비하지 마라. 우물쭈물 하다가 오십 된다’ 이런 심경으로 불렀어요. 으하하하.”(한대수)

 “갓 마흔을 넘은 제가 바라보는 오십이란 나이와 예순을 넘기신 한대수 선생님이 바라보는 오십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혼자 불렀으면 사십오도 경사에서 돌을 피하듯 살고 있는 인생을 자조적으로 노래하는 데서 그쳤겠지만, 선생님의 시점이 들어가면서 노래의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죠.”(이승열)

 그런데 이승열은 ‘그들의 블루스’를 짓고선 왜 하필 한대수를 떠올렸을까. 예순 넘은 가수의 시점이 필요했다면, 떠올릴 수 있는 중견 가수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이승열은 “혼자 생각인지 몰라도 늘 내 음악의 뿌리를 한대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록 스피릿을 닮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이승열의 말끔한 보컬과 한대수의 걸쭉한 보컬이 스미고 짜이면서 경쾌한 블루스 곡이 탄생했다. 마흔 이후 중년의 삶을 노래하기에 이만한 조합도 없다. 특히 노래 중간에 나오는 한대수의 독백이 인상적이다. 녹음할 때 한대수가 제 마음대로 풀어놓은 독백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으하하하, 벌써 오십이 다 됐다니. 세월은 다 어디 갔어….’ 그러곤 잘 안 들린다. 웅얼웅얼 하는 그 독백의 실체를 물어봤다. 함께 녹음했던 이승열도 모르고 있던 진실은 이랬다.

 “하하, 그거 사실 제가 20대 때 만났던 애인들 이름입니다. 예순이 넘어가니까 그리움 밖에 남는 게 없더라고요. 옛날 사람, 옛날 일들 그리워하면서 사는 거죠.”(한대수)

 이 말을 할 때 한대수의 낯빛이 슬쩍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또 다시 으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유독 많이 웃었다. “아내의 병(알코올 중독)이 더 깊어져서 손 쓸 수가 없는 지경”이라고 말하고서도, “네 살 딸을 어떻게 숙녀가 될 때까지 키울지 막막하다”고 말하고서도 그는 유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인생을 살아보니 전부 고통입니다. 제가 지금 아내와 딸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싹 할 수가 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다 마조히스트에요. 계속 얻어맞는 거죠. 고통의 파도는 결코 멈추지 않아요. 파도의 존재 자체를 긍정해야죠. 어쩌겠어요. 그게 인생의 본질인 걸.”(한대수)

 ‘대선배’의 인생론에 이승열이 숙연해졌다. 이승열은 이달 말 ‘그들의 블루스’가 포함된 3집 정규앨범 ‘와이 위 페일(Why We Fail)’을 발매한다. 다음 달 25일부터 9월 24일까지 서울 서강대 메리홀에서 콘서트도 이어갈 예정이다. 잔뜩 숙연해진 이승열이 물었다. “선생님, 콘서트 때 무대에 한 번 서 주실거죠?” 한대수가 어깨를 토닥였다.

 “승열씨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에요. 그 뭐죠? 그래, ‘나는 가수다’ 거기 나가도 좋을 것 같아. 콘서트 때는 내가 꼭 한 번은 무대에 설게요. 이렇게 유망한 후배 가수가 초청하는데 안 갈 수가 있나. 으하하하하.”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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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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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가수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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