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닷컴이즘’이 지배한다!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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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닷컴’의 경쟁력 비결 4가지

물론 자국의 도메인네임을 더 중시하는 기업들도 있겠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세계경제체제 하에서는 국적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도메인네임이 더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닷컴’이 갖는 장점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에 접속하는 어떠한 사용자라도 자신이 원하는 기업(company)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단지 ‘기업명.com’이라는 단순한 체계의 주소를 통해 손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자리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명이 들어있는 도메인네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므로 굳이 메모하지 않아도 누구나 머리 속에 기억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복잡한 URL을 입력하지 않고도 손쉽게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 기업이 속한 국가의 이미지가 배제되어 보다 글로벌한 기업의 이미지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특정기업이 어느 나라 출신 기업인지 가려짐으로써 국가의 이미지에 의해 좌우될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가령 인터넷 사용자들이 특정 국가나 민족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경우(예를 들면 국적이 일본임을 표시하는 ‘*.jp’로 끝나는 사이트를 접하면 이유없이 거부감이 생긴다든지), 그 특정국가의 도메인네임을 고수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결국 글로벌 경쟁시대에서는 자신의 기업이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는지 굳이 밝히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인터넷에 사용되는 언어 중 거의 공용어가 되다시피한 영어와 또 사용자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어권 국가의 사용자들의 경우, 도메인네임 뒤에 붙는 국가명의 약자가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즉, 세계 최대의 인터넷 이용자 보유국인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의 네티즌들에게 인터내셔널 도메인네임이 아닌 것은 충분히 인식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기업명.com’을 두드려보고 없으면 야후·라이코스·인포시크와 같은 검색엔진을 통해 정보를 찾게 되는데(일부에서는 다양한 검색 엔진에 의존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태산같이 쏟아져 나오는 웹사이트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업의 정보를 정확히 찾아내에는 것은 시간과 정력이 많이 소비될뿐더러 원터치 서비스에 익숙한 수많은 네티즌들을 짜증나게 만들기 쉽다.

특정기업에 관한 정보나 제품에 관한 정보를 찾을 때마다 검색엔진을 사용해야 한다면 이미 그 자체로서 글로벌 경쟁에서 한발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닷컴’의 중요성은 단순히 원하는 정보를 쉽게 그리고 빠른 시간내에 찾을 수 있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북마크란 기능에 의해 복잡한 도메인네임도 사용자가 쉽게 지정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닷컴’은 인터넷과 전자상거래로 대표되는 ‘디지털 신경제’의 상징적 의미로 전 세계인들이 인식하고 있으며 기업을 나타내는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역할이 더 중시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결과적이기는 하지만 야후·아마존을 비롯, 인터넷 사업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업체들이 모두 ‘닷컴’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즉, ‘닷컴’이어야 성공한다는 다소 막연한 심리적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미국기업들과 유럽·일본의 유명 기업들 이름에 ‘.com’을 덧붙이면 거의 대부분 해당기업의 사이트로 들어가게 되는 반면 한국기업 중 그렇게 해서 사이트를 찾을 수 있는 기업은 현재 삼성·현대를 비롯해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기업들은 그만큼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전자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불리함을 떠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공평하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의 탄생지가 미국이라는 점에서 그 이외의 국가들에는 원죄(?)와도 같은 룰이 덧씌워진 것이다. 마치 세계 공용어로서의 역할을 하는 영어의 위력(?)이 비영어권 국가 국민들의 많은 불평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사실과 비견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최근 들어 국내의 많은 기업들도 도메인네임, 특히 ‘닷컴’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해 기업이미지 통합(CI) 작업을 통한 ‘닷컴’기업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닷컴’의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지원체제도 서서히 갖춰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인터넷 토털 서비스업체인 ‘인터넷플라자시티’(www.internetplaza.co.kr)는 중소기업은행과 제휴, 지난해 12월부터 도메인 담보 대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즉, 물리적 실체가 없는 인터넷 주소를 담보로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에 최고 3,000만원까지 대출해 주는 서비스가 그것이다. 대출받을 수 있는 대상은 일단 ‘닷컴’ 도메인을 갖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대출금액은 도메인 및 홈페이지 평가가치에 따라 차등적으로 결정되며 대출보증은 인터넷플라자시티가 대행하고 이자는 시중금리보다 싼 연 8∼9.5% 선이다. 인터넷플라자시티의 유완상 사장은 “도메인의 정확한 가치분석을 위해 변호사와 변리사, 교수들로 구성된 도메인 평가기관을 설립하고 앞으로 ‘net’와 ‘co.kr’ 도메인까지 담보범위를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기업 벤처캐피털(CVC)의 새로운 투자 방향도 나타나고 있다. CVC는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창업투자회사나 일반 벤처캐피털과 달리 회사 사업과 관련된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대표적 CVC의 하나로 삼성물산의 벤처투자 조직인 골든게이트팀(팀장 문영우)은 벤처기업을 파트너로 선정, 서로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인데, 다만 투자원칙은 ‘닷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범용성과 첨단성을 무기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 닷컴이즘은 디지털혁명의 상징

최근의 이러한 경향을 두고 어떤 이는 본격적으로 “닷컴이즘(.comism)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자유기업원의 공병호 원장은 이를 단순히 ‘닷컴’ 기업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 범위를 좀더 확대해 개념을 규정한다. 그는 한마디로 “닷컴이즘은 디지털 혁명이 결과적으로 가져오는 전 세계적인 변화를 총칭하는 개념”이라고 표현한다.

“디지털 혁명은 일차적으로 기술적 변화를 일컫는데, 기술적 변화는 서비스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인터넷 혁명’이라고 하지요. 즉, 닷컴이즘은 오프라인에서 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모든 비즈니스가 온라인화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가 자유주의 이념이 극대화된 경제체제, ‘닷컴 자본주의체제’ 하에 놓이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닷컴’은 전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하나의 ‘표준’으로서 21세기 신경제체제를 선도하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한다. 최근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닷컴’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관련 기업들은 등장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현재 홍콩에서 활약중인 세계적인 경제학자 겸 작가 마크 페이버는 2월7일자 “타임”지 기고문에서 인터넷 산업을 “너무나 빈약한 광산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 형상”에 비유한 뒤 “인터넷 산업을 ‘가능성의 신기원’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닷컴’ 산업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인터넷 산업은 우리의 삶의 방식, 작업양식, 교신형태, 사업관행 등을 송두리째 바꿔놓음으로써 그 자체에 재앙을 배태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터넷 산업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단 1분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도 곁들이고 있다. 또 ‘닷컴’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명(인터넷 혁명)은 정보통신 네트워크 인프라가 잘 갖춰진 탓에 고급 정보의 독점이 용이한 소수의 국가나 집단에 의해 경제적 예속이나 편입 사태를 불러올 수 있어 결국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공병호 원장은 “국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터넷 정보는 거의 리얼타임(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서비스되므로 미국 등 인터넷 강국에의 예속을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사이버 봉이 김선달로 유명한 황의석(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용의 제국’을 설립했다. 월간중앙 2000년 2월호 참조)씨는 “닷컴체제는 한마디로 미국식 자본주의, 좀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서구식 자본주의(사업방식)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러한 상태는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하는 가치판단을 떠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므로 개인이나 국가는 이에 잘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국내 인터넷 사용인구가 지난해 말로 1,000만명을 돌파하고 세계 인터넷 사용자도 거의 2억5,000천명에 이르렀다. 불과 1∼2년 전과 비교했을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양적 팽창을 한 것이다.

‘닷컴’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미래가 암울할지 장밋빛일지는 그 누구도 점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닷컴’이 펼쳐보일 미래는 인터넷 이용자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엄청난 속도로,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19세기말, 20세기초에 ‘코뮤니즘’과 ‘캐피털리즘’이 등장해 갈등과 상호보완을 반복하며 한 세기를 풍미했다면, 디지털 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닷컴이즘’은 이제 21세기 전 세계를 강타하기 위해 만반의 채비를 갖춰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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