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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방학 때 아이와 친해지기 … 엄마·아빠 하기 나름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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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방학, 말 그대로 학업을 쉬는 기간이다. 방학동안 부모는 아이와 노는 데 충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10일 서울 양재동 양재문화예술공원 잔디밭에서 ‘아빠놀이학교(cafe.naver.com/swdad)’의 아빠와 아이들이 물총 싸움을 하고 있다.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아이와 부모의 동상이몽이 시작된다. 아이는 일 초라도 더 놀고 싶을 것이고, 부모는 아이의 성적을 끌어올릴 묘책을 궁리 중일 것이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집이든, 그렇지 않든 기억에 남는 방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home&’에서 방학 잘 보냈다는 집들을 찾아 나섰다. 엄마학교·두란노아버지학교·한국부모교육센터에서 추천을 받았다. 기적같이 성적을 올렸다는 집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결 밝아졌고,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내용은 공통적이었다. 무엇보다 아이와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것에 부모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방학을 통해 집 안에 화목을 불러들인 엄마 셋, 아빠 셋의 이야기를 전한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아빠편

딸과 필리핀으로 한 달간 훌쩍 떠난 김시봉(39ㆍ교회 간사)씨

김시봉씨의 딸 하은양(윗줄 가운데)이 필리핀 수도 마닐라 인근의 작은 도시 안티폴로에서 사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 “필리핀말을 하려고 애쓰는 하은이 모습을 또래 친구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안티폴로라는 작은 도시로 큰딸 하은이(12)와 둘만 떠났다. 한국에서 멀지 않고 지인이 있는 곳이라 여행지로 정했다. 몇 년 전 필리핀의 목사님이 우리 집에 묵은 적이 있는데 그 집 신세를 졌다.

오래전부터 직장을 잠시 쉬고 하은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이는 선생님께 야단을 맞거나 성적이 안 좋을 때는 배가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주는 학교에서 떠나 해외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잘 적응했다. 또래와 놀기 위해 타갈로그어(필리핀 언어)를 애써 따라 하는 하은이의 모습을 그들이 좋아했다. 우리가 외국인의 어색한 한국어를 재밌어 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랬다. 하은이가 가는 곳에는 항상 웃음꽃이 번졌다. 늘 사람들이 자신을 반겨주니 수줍음 많던 아이의 성격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귀국 전날 저녁에는 현지인을 위해 지역 교회에서 조촐한 뮤지컬 공연도 했다. 춤을 잘 추는 하은이의 장기를 살렸다. 헤어질 때는 필리핀 사람들이 주는 액세서리·음식 등 선물이 한가득이었다.

특별한 봉사, 특별한 기억 김동현(42ㆍ연구소장)씨

한국시민자원봉사회 회원이다. 지난해 여름 회원들과 함께 어촌 지역과 한 부모 가족 아이를 대상으로 ‘한국 속 미국 체험하기’ 행사를 열었다. 형편이 힘들어 해외 여행을 가기 힘든 아이들이 미군부대에서 색다른 문화 체험을 하도록 돕는 게 목적이다. 두 딸인 지은이(13)와 사랑이(11)도 동행했다. 특이한 공간에서 다른 곳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경험의 폭이 넓어지리라 생각해서다.

또 방학 중에는 서점에 많이 간다. 아빠가 먼저 책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보게 된다. 그런 기억이 책을 읽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글을 잘 쓰고, 상도 곧잘 받아 온다. 지난해 스승의날에는 지은이가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쓰면서 ‘봄 꽃 피고, 여름 지나, 가을 낙엽지고, 겨울 눈 내려도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지켜주셔서 든든하고 감사합니다’라고 해 선생님들이 놀랐다고 한다. 방학 동안 독특한 체험과 서점에 다닌 기억이 아이의 생각을 깊게 만든 것 같다.

캠프 가서 돈독한 정 나눈 이기훈(45ㆍ회사원)씨

서호(16)와 준호(14), 아들 둘이 있다. 4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서호와 단둘이 한 교회에서 주최한 ‘아빠 캠프’를 다녀왔다. 텐트 치고 야영하며 강의도 듣고 지도찾기 게임도 하는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된 것으로 4박5일 일정이었다. 서로에게 섭섭했던 점을 얘기하는 시간도 있어서 관계가 더욱 애틋해졌다. 당시 얘기를 하면서 서로 씩 웃기도 한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인 듯하지만 사실 아이와 일 대 일로 얘기를 나누는 기회가 일상에서는 거의 없다. 힘들 때 그때의 추억이 큰 힘이 된다.

준호도 이를 무척 부러워했는데 사정상 가지 못하다 지난해 기어코 함께 갔다. 태풍이 불어닥쳐 텐트가 날아가고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서로 공유하는 추억이 있으니 아빠를 편하게 대하고, 그래서 사춘기인데도 어려움 없이 지낸다. 아빠와 아들이라면 반드시 한번 경험해 볼 만하다. 그런데 나이 든 아빠라면 캠프장에서 분명 고생을 많이 한다. 꼭 체력훈련을 하고 갈 것을 조언한다.

엄마편

아이와 함께 수영장 탐방한 엄남미(35ㆍ주부)씨

지난해 방학 때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두 아들 성민이(8)·재혁이(4)와 함께 한강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한강 주위에 수영장이 무척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성수쯤에 무료 수영장 하나를 발견했다. 시설도 썩 괜찮고 텐트도 칠 수 있었다. 뚝섬에도 물놀이장 같은 곳이 있다. 물놀이 싫어하는 애들은 없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행 다니다 수영장을 발견하면 들어가 노는 식으로 신나게 보냈다. 안면도 천리포 해수욕장은 주말마다 갔다. 양동이를 들고 아이들과 맛조개를 신나게 잡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갔다. 아이들과 자연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노니까 아이들도 많이 바뀌었다.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항상 활력이 넘친다.

원래는 모든 걸 친정 어머니에게 의존한 무기력한 엄마였다. 애한테 사랑을 못 주니 아이도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데 잘 달래주지도 못했다.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관계가 좋아지는지 고민하고 조언도 얻으면서 노력하니 아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적어 마음이 허전했다. 우리 아이와는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추억이 아이에게는 평생의 에너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대로 마음껏 놀게 둔 김향숙(43·주부)씨

소위 ‘학원 뺑뺑이’를 돌렸던 엄마였다. 그러다 보니 큰아들 영훈이(11)와 관계가 무척 안 좋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더니 말을 안 듣고 성적도 떨어졌다. 학습지도 미루고 공부도 하기 싫어했다. 게으름을 피운다는 생각에 혼내고 때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이게 아니지 싶었다. 불안했지만 영어학원을 제외하고는 다 끊었다.

지난해 여름방학을 맞아서는 매일 캠프장으로 출근하는 등 밖에서 놀았다.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에게 “뭐 하고 싶니”라고 묻고, 원하는 대로 했다. 계곡을 가고 싶다면 거기로 가고, 캠프가 하고 싶다면 짐을 싸들고 나섰다.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제기차기·공기놀이·비석치기 등 별 놀이를 다 했다. 처음에는 노는 것도 힘에 부쳤고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하다 보니 나도 즐기게 됐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다 보니 아이들과도 타협점을 찾았다. 엄마가 양보한 만큼 아이들도 양보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올해 방학을 앞두고 하고 싶은 걸 물었더니 “책을 많이 읽고 싶으니 도서관에 가서 엄마가 많이 읽는지, 내가 더 많이 읽는지 내기하자”고 하더라. 처음에는 아이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 보니 나의 욕심이 아이를 문제아로 만들었던 것 같다.

독서·운동·요리 통해 작은 정 키우는 백남정(43·주부)씨

나에게 방학이란 아이와 평소에 못하는 것을 함께하는 시간이다. 일단 방학 시작하기 전에 방학 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얘기를 나눈다. 놀이동산·계곡 등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얘기하면 그냥 가는 게 아니라 조건을 단다. 종이에 커다란 나무를 그려 붙인다. 이른바 ‘책나무’다. 거기에 어린이책연구회 등에서 뽑은 도서 목록에 오른 책을 읽으면 제목·지은이를 열매 모양의 종이에 써 책나무에 붙인다. 그렇게 나무가 하나 자라면 떠난다. 그러면 책을 읽히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첫째 지영이(13)외 셋째 지우(10)는 여자애인데 지영이가 몸이 약해서 걱정이지만 둘째 상민이(12)는 축구를 좋아하는 씩씩한 남자아이다. 방학에는 아이 셋을 데리고 근처 운동장으로 간다. 첫째·셋째와는 함께 운동장을 돌거나 배드민턴을 치고, 둘째는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게 둔다. 그러면 첫째는 건강이 많이 나아져 다음 학기도 잘 견딘다. 둘째와는 함께 뛰어노는 친구를 알게 되면서 아이와 관계가 좋아져 금상첨화다.

방학 때는 사흘에 한 번쯤 요리도 한다. 주로 간식 메뉴를 애들한테 정하라고 해서 함께 만든다. 그러면 아이들이 스승의날이나 선물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알아서 쿠키를 굽는다든지 한다. 그 점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함께 요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무척 즐겁다.

방학 맞은 학부모가 해야 할 일

엄마는 …

아이가 자신의 삶을 활기차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방학 때도 이에 충실하면 된다. 방학은 학업을 쉬는 기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방학 숙제도 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한다. 엄마가 곁에 붙어 숙제를 다 하려 하면 야단만 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울한 방학이 된다.

 숙제를 잘해 학교에서 상까지 받아온다 해도 아이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담임에게 ‘할 수 있는 것만 할 것이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방학 때 실컷 놀게 하지만, 걱정이 돼 공부를 시킨다면 한 과목에 집중한다. 지난 학년의 책을 읽게 해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것도 방법. 엄마학교 서형숙 대표는 “아이들은 방학 때 실컷 놀아야 에너지가 충전되고 다음 학기 공부도 더 충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빠는 …

바쁜 사회 생활을 핑계로 아이와 소원한 아빠라면 이번 방학에 하나만 잘하자. 육아 전문가들의 말을 다 실천하는 ‘수퍼 아빠’의 첫걸음은 그저 아이를 향한 관심이다. 일상의 공간인 집에서 아이에게 말을 걸기 어색하다면 색다른 공간을 빌리는 것도 방법이다. 방학 때 텐트에서 하룻밤을 지내보시라. 좁은 공간에서 몸 부대끼고 자면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놀이·요리·짐꾸리기 등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아 사이가 돈독해진다. 신체 접촉은 말보다 더 강력한 사랑의 표현이다. 캠핑을 혼자 준비하기 힘들다면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캠프를 예약하는 것도 방법. 의사 결정 과정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경청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 전국재 소장은 “아빠가 ‘얘기 좀 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꺼린다면 관계 맺기가 잘못된 것”이라며 “여행을 통해 아빠가 편안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을 하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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