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회사 사정도 모르면서 왜 나서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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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엊그제 부산역에 속칭 ‘희망의 버스’가 운집했다. 전국에서 모인 7000여 명이 쏟아지는 장맛비에도 아랑곳없이 문화제를 열었다. 이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향했다. 85호 크레인 위에 머무르고 있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그는 정리해고 중단과 비(非)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186일째 고공에서 농성 중이었다. 한진중공업은 경영 악화로 설비 일부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지난해 정리해고를 단행했었다.

 모양새만 보면 서민들 가슴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리해고는 남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미구에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가슴을 겨냥해 최루액 물대포라니. 문제는 이런 착한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려는 선동과 포퓰리즘이다. 벚꽃 무늬 플래카드를 든 시민 사이로 낯익은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우병 촛불시위 때도, 쌍용차 사태 때도 모습을 드러낸 정치인·노동계·이념단체 관계자들이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기보다 갈등을 부추기려 노력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다.

 노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권은 표다. 서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 한다. 노동계는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존재감을 과시하며 노동운동의 동력원으로 불씨를 살리려 한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광우병이 과민반응으로 결론이 났어도, 쌍용자동차가 정상화됐어도 사과는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선동의 마당으로 활용하면 그뿐인가.

 김진숙씨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과적으로 노사합의를 도출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이제 한진중공업 문제는 노사 협의에 맡기면 된다. 무엇을 위해 농성을 계속하는가. 간신히 수주를 받고 정상조업에 들어갔는데, 또다시 차질을 빚으면 결국 피눈물을 흘리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노동연대를 내세우지만, 이들의 희생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욱이 김씨를 비롯해 모두가 제3자 아닌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도 “회사 사정도 모르면서 왜 나서느냐”고 부르짖는다. 이들에겐 ‘희망의 버스’가 아니라 ‘절망의 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