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설렁탕도 1만원 … 서민들 찾는 ‘1군 식당’이 주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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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6월 9일자 E2, E3면.

이달 5일과 6일. 김승기 한국외식개발연구소장과 이 연구소 소속 요리사 유대근 실장, 본지 기자는 서울 강남과 강북의 유명한 설렁탕집·콩국숫집을 찾았다. 설렁탕 한 그릇 가격은 1만원, 특설렁탕은 1만3000원, 콩국수는 9500원이었다. 올 초보다 1000원 이상씩 오른 가격이다. 음식을 자세히 관찰·분석한 김 소장과 유 실장은 재료비를 3000∼4000원대로 봤다. 김 소장은 “원재료 가격 인상분을 시세로 따져보면 500원 정도 올리면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점심값 1만원 시대다. 본지가 서울의 맛집으로 소문난 ‘1군식당’ 28곳의 음식값을 조사한 결과 이들 식당은 지난해 말부터 올 4~5월 사이 집중적으로 가격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군식당들이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요지의 중형식당이 동참하더니, 결국 동네 소형식당까지 가격을 올리는 도미노 현상이 감지됐다. 김 소장은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1군식당이 점심값 인상을 주도했고, 이미 오를 곳은 전부 올랐다”며 "가격 인상을 잡을 타이밍은 이미 놓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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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해 전문가와 식당, 식자재 유통상들의 분석은 이렇다. ▶식자재값이 크게 올랐고 ▶매출과 관계없이 임대료가 해마다 8~9%씩 오르고 있으며 ▶인건비도 1인 이상 고용 때도 4대 보험이 의무화되는 등 부담이 생겼고 ▶카드 사용 증가에 따라 세금 부담이 덩달아 늘었다.

 그럼에도 1군식당이 1000~2000원을 올린 것은 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 소장은 “1군식당은 구매량이 많다 보니 식자재를 오른 가격보다 싸게 공급받을 수 있고, 임대가 아니라 자기 건물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기타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상폭이 과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600곳 식당과 거래하는 도매상 김모씨는 “일부 요지 식당의 경우 인상된 가격에 비상식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내가 재료값을 계산해 봐도 인상분이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특히 1군식당일수록 반찬은 김치 한두 종류 등으로 특화하고, 메인 메뉴도 가짓수를 많이 하는 대신 한두 가지에만 집중하므로 식자재 구매나 인건비에서 한층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1군식당이 한번에 1000~2000원씩을 올리는 것은 희소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양냉면이나 콩국수는 특정한 맛을 내는 업체가 극히 소수다. 맛을 지키려 재료를 비교적 정직하게 쓰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도 사람들은 먹으러 간다. 11개 음식점을 운영하지만 2년간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은 한 외식업체 사장은 “원가 비중이 3년 전의 27%에 비해 32%까지 높아졌지만 손해 보고 파는 것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1군식당은 손님의 가격 저항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한 번 올릴 때 과감하게 가격을 올린다”고 전했다.

 1군식당도 할 말은 있다. 유명 냉면집 A 사장은 “가격을 올린 것은 메밀과 녹두 같은 원자재 값이 많이 오른 게 이유”라고 말했다. 국산 메밀은 지난해만 해도 20㎏에 16만원 하던 게 지금은 23만5000원까지 올랐다는 것. 그는 “대량 구매하다 보면 조금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납품업자가 가격을 올릴 때 우리한테만 안 올리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강남 설렁탕집 B 사장은 “우리는 자가 건물이 아니라 임대”라며 “임대료와 인건비가 해마다 오르는데 큰 식당이라고 덜 힘들진 않다”고 해명했다.

 한 달 반 전 순두부 가격을 1000원 올린 명동의 한 순두부집 변모 사장은 “1군식당이 1000원씩 가격을 올려주면 따라가는 다른 식당은 아무래도 올린 걸 고객에게 설명하기 쉬워진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만 안 올리면 싸구려 재료 쓰는 거 아니냐고 손님들이 의심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외식값 인상을 잡을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 배추 값과 마늘 값, 천일염처럼 기초가 되는 식자재 값 파동 때 번번이 뒷북을 쳤다.

◆ 특별취재팀 = 최지영·이수기· 정선언 기자, 최나빈 인턴기자(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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