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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전은 마라톤 … 시간 갈수록 “평창” 소리가 들려왔다

중앙선데이

입력

2월 17일 강원도 진부면에서 주민들이 IOC 현지실사단을 환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평양에서 2018년 겨울올림픽이 열리기를 바란다.”
지난해 11월 26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하얏트호텔의 유럽올림픽위원회(EOC) 총회서 만난 유럽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기자에게 말했다. 평창을 평양으로 잘못 말한 것이다. 그래도 고마웠다. 그런데 하필 총회 직전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까지 숨진 터였다. 그때까지 평창은 그 정도 존재감밖에 없었다.

그보다 한 달 전인 10월 21일, 멕시코 아카풀코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총회도 평창으로선 아쉬움이 컸다. 그해 6월 IOC가 후보도시로 평창과 뮌헨(독일), 안시(프랑스)를 공식 지명한 후 열린 첫 프레젠테이션이었다.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은 멕시코 현지어인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호응을 이끌었고 카타리나 비트는 총회장의 에어컨 바람을 두고 “너무 추워 여기서 당장 겨울올림픽을 열어도 되겠다”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겼다. IOC 위원들은 “깔끔하고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이라고 입을 모았다. PT 후 뮌헨 사단은 개선장군처럼 호텔 로비를 활보하며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평창 관계자들은 PT 후 사라져 버렸다. 외신들은 기자에게 “평창 관계자들은 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물었다. 당시 IOC 관계자들은 “뮌헨의 완승”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유치전은 마라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평창”이 들리기 시작했다. 위원들이 먼저 “평양이 아니라 평창이지?”라며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희 IOC 위원의 폭 넓은 접촉과 조양호 유치위원장의 끈기 있는 노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에너지와 뚝심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조 위원장은 밤새 비드북(유치신청서)을 공부하며 내용을 달달 외웠다. 영국인 스피치 전문가를 특별 섭외해 특훈도 받았다. 박 회장은 에너지와 유머를 발휘하며 시간을 쪼개 IOC 위원들을 만났다. 10년간 유치전을 펼쳐와 IOC 위원들에게 친근한 얼굴인 김진선 대통령 특임대사의 활약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톡톡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뒤에서 조용하지만 분주하게 움직인 실무진의 노고도 컸다. 박선규 문화부 차관은 보이지 않는 갈등을 조절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2월 17일 강원도 진부면에서 주민들이 IOC 현지실사단을 환영하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 유치전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 건 2~3월의 IOC 현지 실사 때부터. 당시 뮌헨·안시는 현지 주민의 반대 시위에 골머리를 앓았다. 독일의 홀게 퀴너 기자는 “뮌헨은 반대 시위를 해결하느라 유치전 후반부에 진을 뺐다”고 전했다. 평창에선 2018명의 현지주민이 평창 유치 기원 노래를 불렀고 IOC 실사단은 어딜 가나 주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홈런은 김연아 선수가 쳤다. 지난 5월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열린 테크니컬 브리핑에서 김연아는 화려하게 등장해 막판 유치전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결전의 날, 최고의 PT를 펼친 건 뮌헨이 아닌 평창이었다. 외신기자들은 “대통령이 직접 총회 시작 며칠 전부터 날아와 위원들을 만나고, PT에선 열심히 연습했다는 진심이 느껴지도록 직접 영어로 연설한 게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로컬’ 대신 ‘글로벌’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유치위는 마이크 리(영국), 테렌스 번스(미국), 찰리 배틀(미국), 어스킨 메캘러우(아일랜드), 라즐로 바즈다(헝가리), 이영숙(재미한국계) 등의 국제 드림팀 컨설턴트를 영입했다. 이들은 IOC계의 정보를 모으고 위원들을 접촉했으며 PT 연설자들의 토씨 하나까지 다 챙겼다. 정작 한국엔 국제 스포츠외교 인력이 마땅치 않았다는 방증이다. 나승연 대변인이 큰 역할을 한 것도 외국인 컨설턴트들의 조언이었다. 마이크 리는 “양복 입은 한국 중년 남자들로 가득한 평창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테레사(나 대변인의 영어 이름)를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한 외국인 컨설턴트는 “뮌헨은 IOC 위원들에게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개최하면 여러분이 세련되지 못한 한국인들과 일해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로비를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5월 로잔의 테크니컬 브리핑 당시에도 IOC계를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본부 호텔인 보리바주 호텔 로비를 점령하다시피 해 IOC 관계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평창은 모든 약점과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승리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 스포츠외교는 또 한번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더반(남아공)=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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