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베토벤 ‘크로이처’의 명반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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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05면

비가 오는 것 같습니다. 음반 안에서 말입니다.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1880~1953)의 연주입니다. 베토벤 소나타 9번 ‘크로이처’. 녹음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1927~29년 음원이죠. 가끔 음악보다 바람소리가 더 크네요. 바이올린이 혼자 여는 서두는 지나치게 느린 느낌입니다. 비 내리는 것처럼 자글거리는 소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이내 질주가 시작됩니다. 피아노와 함께 뜨거운 숨을 토할 듯합니다. 급격한 속도 변화에 바이올린 음색은 매끈해집니다. 균형을 생각하기보단 격정에 몸을 싣네요.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요새 나오는 음반들에 비하면 불완전합니다. 음정을 틀리거나 테크닉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음표를 뭉개기도 합니다. 자의적으로 속도를 변형시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티보의 ‘크로이처’를 다 듣고 나면 참 세련됐단 생각이 듭니다.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를 들어볼까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74)가 62년 내놓은 ‘크로이처’ 녹음은 지금껏 손꼽히는 명반입니다. 단단한 고무줄 튀기듯 첫 화음을 시작한 후, 줄곧 건강한 음악을 펼쳐놓습니다. 음악이 뜨거워지는 부분에서도 흥분하지 않습니다. 잘 계획된 속도 안에서 발맞출 뿐입니다. 티보의 ‘크로이처’가 세련된 세단 승용차였다면, 이건 고지식한 클래식 카 같습니다.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는 작가 톨스토이가 ‘격정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 경계했던 작품입니다. 그의 말년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이 작품은 불륜ㆍ살인의 불씨가 됩니다. 유난히 끈적하고 열망이 가득한 음악의 정서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프랑스ㆍ러시아를 대표하는 옛 바이올리니스트 둘은 이 신기한 작품을 각자 특징대로 남겼습니다. 이후 ‘프렌치 바이올린’과 ‘러시안 바이올린’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됐죠.

옛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는 특색이 분명합니다. 특히 나라별로 구분이 됐습니다. 벨기에ㆍ프랑스는 부드러웠고, 러시아는 엄격했으며, 미국은 유머러스했죠.
하지만 요샌 이런 전통이 희미해졌습니다. 이제 연주자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 연주를 보고 배웁니다. 음악에도 ‘표준화’가 있는 듯합니다. 또 녹음 후 조금이라도 잘못 연주한 부분은 일일이 고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수정 가능한 시대였다면 야샤 하이페츠(1901~87)의 ‘크로이처’는 남아 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템포를 지나치게 당긴 것 아닌가’하고 불안할 정도로 달려가니까요. 하지만 하이페츠의 연주를 다 듣고 나면 연주자의 진짜 모습과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슬아슬하게 함께 질주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음악 칼럼니스트가 말하더군요. “요새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앨범 표지를 봐야 구분해요. 연주만 듣곤 몰라요.” 뜨거운 ‘크로이처’를 굳이 지직대는 옛날 음반으로 들으며 이 장마철을 지내고 있는 이유입니다.

A LP의 ‘날 것’ 느낌 좋아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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