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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수십 만 귀향 행렬 … “이젠 번영만 남았다” 열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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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10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주요 인사들이 9일 남수단의 독립 축하식에 참석하기 위해 유엔 항공기 편으로 8일 수도 주바의 공항에 도착했다. [AP=연합뉴스]

거리를 차들이 메웠고 경적을 울렸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을 췄다. 곳곳엔 독립 축하 플래카드와 남수단 깃발이 날렸다. 사람들은 새 국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축복했다. 9일 독립을 공식 선포하고 유엔 193번째 회원국이 된 남수단의 수도 주바 시는 들떴다. 50년 내전, 200만 명이 죽고 400만 명이 나라를 등진 시련 끝에 맞는 독립이다. 축제는 전날부터 시작됐다. 기자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독립 기념식 참석을 수행해 도착한 주바 공항 바로 옆 유엔기지에도 밤늦게까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독립 당일인 9일 낮, 시내에 모인 시민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기뻐했다. 태어나서 우울한 역사만을 봐왔던 젊은이들은 “새 역사가 시작된다. 이제 번영만 남았다”고 소리쳤다.

반기문 총장 동행 취재 남수단 독립선포 현장을 가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등졌던 남수단 주민 수십만 명의 귀향 행렬도 이어진다. 10년 전 수단의 수도 하르툼으로 떠나 살아온 젊은 여성 날 왁은 외신에 “설움이 컸다. 독립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북부에선 직업도 못 갖고 진흙집에서 비참하게 살았다”고 감격을 털어놨다. 미국ㆍ유럽으로 떠난 뒤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들도 신생국 건설에 참여하기 위해 돌아온다.

북수단과는 너무 달랐다. 독립기념식 하루 전인 8일 오후 2시 수단 수도 하르툼 국제공항은 썰렁했다. 공항서 만난 유엔평화유지군(UNMIS) 소속 그레고리 볼턴은 “북수단 국민 사이에 불만이 팽배해 있다. 남수단의 독립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라고 했다.

9일 낮 독립 기념식은 나름대로 성대했다. 반 총장과 세계 30개국 정상, 3000여 명 귀빈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이재오 특사가 갔다. 한국과의 인연은 독특하다. 지난해 1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故)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 8년 동안 의료ㆍ교육 봉사를 했고 그 헌신을 담은 영화 ‘울지 마 톤즈’로 한국 사람들은 남수단을 알게 됐다.

이 특사는 세계 기자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무장관 내정자 뎅 알로르 쿠올와 외교관계 수립 의정서에 서명했다. 당초엔 반 총장과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 남수단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예정됐었다. 그런데 회견에 앞서 의정서 서명식을 하도록 배려했다.

신생 독립국 치고는 남수단의 전망은 나름대로 밝다. 석유 덕분이다. 빈손으로 독립한 한국과는 다르다. 남수단 영토는 수단 전체의 30% (한반도의 3.5배)지만 석유는 전체 매장량의 70%인 46억 배럴을 갖는다. 오일 머니는 인구 830만 명인 이 나라의 독립 자금이다. 그 돈으로 100억 달러 규모의 신수도 건설도 계획한다. 아프리카의 떠오르는 시장이다.

구애 행렬이 이어진다. 중국ㆍ미국ㆍ일본 등 30여 개국이 수도인 주바에 대사관 또는 영사관을 개설했다. 독립 행사에 온 정상은 그런 계산을 한다. 중국이 특히 발 빠르다. 현재 수단 원유의 80%인 40만 배럴을 매일 수입한다. 유전지대-우간다-케냐 몸바사까지 2000㎞ 송유관 건설도 제안했다. 미국은 주바-우간다 연결 고속도로에 2억 달러, 이탈리아는 학교급식 프로그램에 5000만 유로를 원조했다. 100억 달러 규모의 신수도 건설 참여를 노리는 한국에선 에너지인프라사절단이 지난 4월 수단을 방문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신수도 건설 마스터 플랜 작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국가 건설이 쉬운 과제는 아니다. 기초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남수단에 유일한 주바 국제공항은 이번 주 민간 항공기 운항을 폐쇄했다. 쇄도하는 외교 사절 처리에 관제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공항-대통령궁 길도 비포장이다. 남수단의 포장도로는 전국에 50㎞ 안팎. 인프라는 내전으로 파괴됐다. 통신이나 인터넷은 엉망이다. 수십만 명 귀향 인파도 새로운 문제다. 공항 인근엔 노숙 난민이나 구걸하는 사람, 싸구려 물건을 파는 모습이 흔했다. 국민 대부분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북수단과의 석유 분쟁은 전쟁 직전이다. 독립 남수단은 하루 생산량 40만 배럴 가운데 75%를 갖는다. 북수단은 불만이다. 북수단엔 정유공장, 송유시설, 석유 수출항이 있다. 그래서 서로 “생산 중단” “수출 중단” 하겠다고 협박한다. 유전지대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아직도 국경 지역에선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다.



남수단=지난 1월 국민투표에서 남북 분리 독립이 결정됐다. 2000㎞ 국경선엔 폭 10㎞ 비무장지대를 둔다. 북부는 아랍계 이슬람교도, 남부는 기독교ㆍ토착 종교 신도가 다수인 탓에 1983~2005년 종교 갈등과 인종 분쟁 같은 참극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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