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의 폐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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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호 15면

얼굴을 맞대는 만남보다 사이버 공간 대화가 더 익숙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식구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아도, 소셜 미디어 속에서는 계속 친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세다. “미디어는 마사지다”라고 쓴 캐나다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의 이론을 비틀어 보자면, 디지털 소통은 사지에 기계를 덧대고 마사지를 받는 것과 같다. 인터넷상에서는 내가 말로 상처를 주어도 상대방의 아픔이 금방 보이지 않는다. 수십 시간 동안 가상공간에 머물러도 눈물을 닦아주는 부드러운 1초의 손길과 비교할 만한 걸 만날 수 없다. 베갯머리에서 나긋하게 말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뇌파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접할 때의 뇌파가 같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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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디지털 소통…. 겉으로는 무언가에 참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는 분리되기 십상이다. 현실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니 소외된 느낌도 쉽게 받는다.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하는 의견조율과 자기반성이 여의치 않아, 분노나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도 걸러지지 않은 채 증폭돼 전달된다. 실제 도움을 주고받을 때는 망설여도, 잔혹하게 변할 때는 걷잡을 수가 없다. 익명성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자살을 예고하며 죽어가도 신고하는 친구조차 없고, 악플러들이 마녀사냥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계통화와 가상공간에 몰입하면 할수록 현실에서 사람을 직접 만날 에너지가 줄어들어, 히키코모리 같은 폐인이 될 수 있다. 공감 능력, 비판 정신, 상상력, 인지 능력도 퇴화하고 손상받을 가능성이 높다. 웹상에서 지식은 받아들이지만,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훈련을 받지 못하면 결국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학교·군대 폭력도 개인 문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사회의 한 징후가 아닐까.

인터넷의 정보는 자의적으로 퍼내 멋대로 해석하기 쉽기 때문에, 조직화된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직접 묻고 스스로가 변하고 성장하는 과정도 생략된다. 검증되지 않은 조언자들의 엉뚱한 처방으로 크게 낭패를 보기도 한다. 가상공간 멘토들이 자신들이 사이버 공간에 뱉어 놓은 말에 무슨 책임을 지겠는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계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때론 원시부족의 무의식 세계보다 오히려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이다. 물신숭배, 외모지상주의, 파편화된 공동체의 자기소외가 그 증거다.

곧 모든 학교에서 디지털로 강의를 진행할 거라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지 않아도 기계와 친하기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한국 학생들이다. 매클루언이 예견한 대로 로봇같이 변한 이들이 그나마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매체가 책이 아닌가. 학교는 전통을 재료로 미래란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학교란 식당에서 이제부터 편리한 패스트푸드만 먹으란 얘기다. 책을 만지며 글씨도 쓰고 밑줄 긋고 표시도 해야 섬세한 소근육 동작을 통해 아이들의 뇌도 발전한다. 고정된 모니터만 보고 마우스만 움직이는 학생들이 척추와 팔 근육에 얼마나 통증을 달고 사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온종일 기계만 접하는 아이들은 불쌍하고 무섭다. 기계는 사랑과 절망을 함께 나누는 심장이 뛰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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