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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중국 은행 부실자산 위험” 경고 … 루비니 ‘퍼펙트 스톰’ 시작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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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5일(현지시간) “중국 시중은행들의 부실 자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난달 12일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퍼펙트 스톰(최악의 폭풍)’ 주장과 맞물리며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루비니는 “2013년 세계 경제가 퍼펙트 스톰을 만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니의 퍼펙트 스톰은 유로 사태, 미국 재정위기, 중국 경착륙이 한꺼번에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사태다. 많은 전문가는 “세 가지 가운데 중국 경착륙이 가장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며 “그 시작은 중국 부동산시장의 붕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집값이 떨어지는 조짐을 보였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버블 붕괴의 징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값 하락 → 대출 부실화 → 신용경색 → 기업·가계 도산 → 경제 경착륙’의 첫 단추가 채워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중국 경제가 서구식 금융위기의 전철을 밟을까. 그 뇌관인 부동산시장을 긴급 점검해 본다.

상하이 시내 구베이(古北)에 국제화원(國際花園)이라는 아파트가 있다. 부자와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고급 단지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체에 따르면 이 아파트 시세는 요즘 ㎡당 6만 위안(약 1000만원) 정도다. 평당 약 3300만원꼴이다. 서울 강남의 어지간한 아파트보다 비싸다. 이 아파트는 그러나 2008년 말만 하더라도 ㎡당 2만8000위안 정도면 살 수 있었다. 2009년 들어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더니 그해 말 5만 위안으로 뛰었고, 2010년 말에는 5만8000위안에 이르렀다. 2년 반 사이 약 115% 오른 셈이다. 김형술 상하이 부동산랜드 사장은 “호가만 있을 뿐 거래는 잘 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올 초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대책 이후 눈치보기가 성행하고 있다”며 “2009년 시작된 부동산 투기 붐으로 푸둥(浦東)에는 평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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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베이 국제화원은 중국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주요 도시의 주택 평균 가격은 2008년 말 이후 100% 안팎 올랐다. 전반적인 시세는 ‘2009년 폭등, 2010년 급등, 2011년 강보합’으로 요약된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경기부양 대책의 후폭풍이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11월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4조 위안의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은행 창구를 활짝 열었다. 2009년에만 약 9조6000억 위안, 2010년 7조5000억 위안의 신규 대출이 풀렸다. 예년의 3~4배 규모다. 그 돈이 흘러든 곳이 바로 부동산 시장이었다. 2009년 들어 집값이 치솟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덩융헝 싱가포르대학 부동산연구소장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재정자금은 철도·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은행 자금은 부동산 시장에 모였다”며 “특히 기업이 대거 부동산 시장으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투기꾼도 가세했다. 지난해 고급 아파트 분양의 약 85%가 6개월 내에 주인을 바꿨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투기꾼들이 휘젓고 다니는 사이 시장에서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자리잡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게 지난해부터다. 2010년 4월 국무원이 10개 사항을 담은 부동산 안정대책(신국10조·新國十條)을 내놨지만 시장엔 도무지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 그러자 지난 1월엔 이를 보강한 8가지 대책(신국8조·新國八條)을 발표했다. ▶5년 내 매각에 중과세 부과 ▶개발 택지의 70% 소형주택 건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상하이 김형술 사장이 언급했던 바로 그 대책이다.

 이는 일단 겉으론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70개 주요 도시 중 가격이 떨어졌거나 변화가 없는 도시가 20개에 달했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연안 지역 대도시는 오름폭이 눈에 띄게 둔화됐다. 국가통계국은 3분기에는 주택가격이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안 도시의 상승률은 둔화됐지만 내륙 도시는 오히려 올랐다. 난창(南昌)이 전년 동기 대비 7.1% 올랐고, 스자좡(石家庄)·선양(瀋陽) 등도 7%에 육박했다. 투기 붐이 연안에서 내륙으로 옮겨간 것이다. 전형적인 풍선 효과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는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서방 일각에서 ‘중국 부동산발(發) 세계 경제위기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타오 UBS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3~5년 급등세를 탄 뒤 결국 버블이 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50%가 부동산 분야와 연관된 만큼 버블 붕괴는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주택가격이 급락했던 2008년 상하이·베이징·선전 등의 많은 부동산개발 업체가 도산하는 등 경제에 큰 부담을 안겨줬다.

 유명 중국경제 전문가인 니컬러스 라디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과잉투자를 우려한다. 그는 “2010년까지 GDP 주택 분야 투자액 비율은 9%로 2006년 수준의 두 배로 늘었다”며 “금리 인상, 부동산 거래 차익에 대한 중과세 등의 조치가 투자 과잉으로 생겨난 버블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위축이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중국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개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정부가 아직까지는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게 큰 이유다. 신다(信達)증권의 분석가인 천자허(陳嘉禾·진가화)는 “중국의 은행 대출 구조는 서방처럼 복잡하지 않고, 시장도 주택 위주의 단순한 구조로 짜였다”며 “부동산 가격이 어느 정도 떨어질 수는 있지만 충분히 통제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금융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발 위기는 기우’라는 설명이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오히려 다른 곳에 주목한다. 흔히 ‘흑색 부동산 매입단(黑色購房團)’으로 불리는 지방정부의 눈덩이 빚이다. 3327개 성(省)·시(市)·현(縣)급 지방정부에 땅(국유지)은 최대 재정 수입원이다. 지방정부는 또 부동산거래세·부동산개발세 등의 명목으로 돈을 떼어간다. 한링궈는 “아파트 가격의 약 70%는 지방정부 몫”이라고 추산한다. 문제는 이들 지방정부의 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말 현재 부채는 약 10조7000억 위안. GDP의 약 4분의 1이다. 지방정부의 약 40%가 땅을 팔아 부채를 갚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중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그들이 부동산 집값 하락을 반길 리 없다. 핑룬(憑侖) 전국부동산협회 부주임은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폭등을 억제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급락을 막는 데 있다”며 “그런 면에서 올 들어 주요 도시의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은 막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무원이 지방정부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중국의 부동산 문제는 중국을 넘어 이제 세계 경제의 큰 위험 요인이 됐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버블 논쟁이 더 치열해진 이유다. 버블이냐 아니냐,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만약 버블이라면, 언젠가는 결국 터진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미국이 그랬듯 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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