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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인증한 병원, 고품격 의료로 거듭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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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01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조사위원이 인증을 신청한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진료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1시30분,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위치한 한길안과병원에 긴장감이 돌았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조사위원 3명이 의료기관 평가를 위해 찾아왔기 때문이다. 조사위원들은 병원의 행정 전반이 담긴 서류부터 검토했다. 이어 병원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파악을 마친 조사위원들은 다음날 본격적인 추적조사에 들어갔다. 조사위원 한 명이 의무기록을 살피더니 환자를 골라냈다. 이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내장과 망막 수술 환자 2명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퇴원하는 순간까지 받았던 모든 진료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주치의와 간호사를 불러 처치했던 과정을 캐묻고 의무기록과 대조했다. 마지막 날은 조범진 병원장에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병원을 운영하는지, 직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물었다.
사실 한길안과병원은 인증을 받기 위해 8개월간 준비했다. 어떤 항목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150명 전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다. 처음 받는 평가였다. 병원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인증원으로부터 이틀간 컨설팅을 받았다. 컨설턴트는 모두 잘 준비했는데 당뇨병 환자를 위한 입원 특별식이 추가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안과수술 환자는 대부분 입원 반나절 만에 퇴원한다. 기껏 먹어봤자 한두 끼지만, 병원은 당뇨 환자에게 맞는 식사를 따로 준비하기로 했다. 이 병원 기획실 노미남 주임은 “병원 인증을 받으면서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이 향상됐다”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 직원이 화합하고 단결하면서 시너지 효과도 났다”고 말했다.

강제 평가 제도에서 자율신청 인증제로

의료기관 인증제란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를 평가하고, 통과의 의미로 인증을 주는 제도. 대입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뀌었듯 지난해 6월 의료기관 평가제가 인증제로 개편됐다.
그동안은 정부가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에 한해 강제평가를 해왔다. 그러나 평가의 전문성과 객관성이 떨어지고 평가 결과를 서열화하면서 여러 문제가 지적됐다. 평가가 병원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반짝 효과’에 그친다는 것이다. 또 ‘1등부터 줄 세우기’ 식으로 병원 간 과잉경쟁이 유발됐다. 의료기관 평가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자 정부는 2007년부터 선진화 방안을 추진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올해 1월 24일부터 시행된 의료기관 인증제다.
어떤 시험문제가 나오고, 유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의료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지난해 7월 인증기준이 공개됐다. 서울대병원 QA팀 김문숙 팀장은 “새로운 평가 기준과 방법이 낯설어 당혹스러웠다”며 “기존 평가로부터 대변신한 인증제를 전 직원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체크리스트 방식으로 의료기관을 평가했다. ‘화장실에 장애인을 위한 손잡이가 있는가’. 있으면 Y, 없으면 N으로 표시하는 식이었다. 병원의 시설과 인력·장비·부서 등을 이렇게 평가하니 실제 필요가 없어도 평가를 위해 설치하는 일이 잦았다. 이는 환자진료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실제 의료서비스 수준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

진료 체계직원 채용경영진 리더십까지 평가

새로운 인증제는 의료기관의 기능과 의료서비스 제공 과정에 주목한다.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목표로 조사기준을 짰다. 문항은 전체 4개 영역, 13개 장, 41개 범주이며 83개 기준과 404개 조사 항목이 있다. 환자와 직원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검사와 진료체계는 갖췄는지, 약물구매부터 보관·조제·투약·모니터링은 잘되는지, 경영진은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의료인력은 적절히 배치됐는지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의료기관 평가·컨설턴트를 맡고 있는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손정일 교수는 “한 의료기관을 평가할 때 3~6명의 조사위원이 3~4일간 병원의 모든 걸 다 본다”고 말했다.
인증제의 가장 큰 특징은 추적조사 방법이다. 조사위원이 임의로 환자를 선택해 진료받은 경로를 추적한다. 의료진이 초기대응을 어떻게 했는지, 협조와 의사소통이 원활했는지, 환자가 지체 없이 치료를 받았는지, 병실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등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해 평가한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이선희 정책개발실장(이화여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 환자에게 그동안 해왔던 절차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하기 때문에 오류를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지조사는 의료기관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다르다.

지난해 9월 7일부터 3일간 시범조사를 받았던 경기도 부천의 다니엘종합병원 문옥륜 병원장은 “시범조사 전에 직원들과 규정을 완벽히 숙지하고 수 차례 반복 검토했는데도 철저한 조사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조사위원이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살수 소화 장치)를 작동시켜 보라’고 한다든가, 화재 시 비상탈출용 밧줄을 꺼내 ‘실제처럼 사용해 보라’고 주문한다.
인증제의 또 다른 특징은 참여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평가참여 결정을 의료기관의 자유 의사에 맡긴다. 그렇다면 누가 시험을 보겠는가.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이규식 원장은 “JCI와 같은 세계적인 인증은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의료기관이 고액을 들여 평가를 받는다”며 “그만큼 평가기준이 의료기관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우리 인증제도 의료기관이 평가의 필요성을 느끼고 받게끔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래야 평가제도가 수험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인증기준을 충족했는지에 따라 인증, 조건부 인증, 불인증 등 3단계로 등급을 나눴다. 이선희 실장은 “전국 1등만 좋고 80등 병원은 불안한게 아니다. 어떤 병원이 환자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병원인지 국민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잘못된 평가정보가 지역병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낳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유발했다. 이규식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상당히 높다”며 “대형병원부터 국민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지역 중소병원까지 국민이 인증원의 인증을 믿고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증제는 지난해 11월 18일부터 조사를 시작해 지금껏 39개 의료기관이 인증을 받았다. 인증은 4년, 조건부 인증은 1년간 유효하다.

인증마크를 받은 의료기관에 대해 이선희 실장은 “국제적 수준에 걸맞은 진료체계를 갖춘 병원이란 평가를 받은 것”이라며 “환자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부분까지 들여다 봤더니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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