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영국 테스코, 불문율 깨고 창문 낸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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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백화점·대형마트에 없는 것 두 가지가 뭘까. 창문과 시계다. 쇼핑객에게 지금이 몇 시인지 알려주는 건 집에 가라고 재촉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 창문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천장까지 특수 제작한 창을 설치한 매장이 있다. 테스코그룹이 운영하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테스코 램 지점이다.

 이유가 있다. 매장을 밝히는 데 햇빛을 쓰기 위해서다. 2280㎡의 매장에 설치된 LED 전구도 남다르다. 센서가 달려 주변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조도를 조절한다. 그뿐이 아니었다. 냉난방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출입문 바깥에 작은 공간을 따로 뒀고 냉장식품 코너 냉장고엔 유리문을 달았다. 매장 밖에는 화장실 변기물로 쓰기 위해 빗물을 모으는 곳도 있었다. 아예 열병합발전 시설을 갖추고 전기를 직접 만들어 썼다. 매장에서 쓰는 전기보다 생산하는 전기가 많아 수치상 탄소배출량이 마이너스다. 램 지점이 세계 최초의 ‘탄소제로 점포’로 불리는 건 그래서다.

 당연히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었다. 지난달 28일 만난 마크 스틸 점장은 “일반 매장에 비해 30% 정도 시설비가 더 들었다”고 말했다. 테스코그룹은 2020년까지 전 점포의 탄소배출량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진 모든 점포를 탄소제로 점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게 고비용 실험을 하는 이유에 대해 루시 네빌롤프 부회장은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다. 환경이라는 가치를 고객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나라다 보니 일찍이 환경문제를 겪었다. 스모그로 인해 1872년 243명, 1952년 수천 명이 사망했다. 그만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네빌롤프 부회장 말마따나 가치를 소비자와 공유하는 것, 램 지점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점포는 인구가 9000명뿐인 외곽에 있다. 그런데 고객카드 소지자는 2만 명이 넘는다. 멀리서 찾아온다는 얘기다. 2009년 12월 문을 연 이 매장의 주당 매출은 1년 사이 27만5000파운드에서 40만 파운드로 뛰었다. 싸고 좋은 제품을 파는 것은 ‘1등 유통업체’의 필요 조건일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걸 램 지점은 말해 주고 있었다. 상품을 넘어 가치를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충분조건 아닐까.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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