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도 굴복 못 시킨 아프간 … 패네타 ‘탈레반 껴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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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취임 선서를 한 리언 패네타(Leon Panetta·73·사진) 신임 미국 국방장관. 그가 업무 파악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한 공식 행사는 해외 파병 미군들과 통화하는 것이었다. 패네타는 4일(현지시간) 미 독립기념일을 맞아 6명의 해외 파병 미군에게 전화했다고 미 국방부 웹사이트가 밝혔다. 이 중 4명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이었다. 아프간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싸우는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국방부 수장으로서 패네타의 핵심 과제는 안전하고 명예로운 아프간 출구 전략(exit strategy) 마련이라고 지난 1일 보도했다. 미군의 철군 이후 아프간이 ‘제2의 베트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현재 10만2000명에 이르는 아프간 주둔 미군 가운데 3만3000명을 내년 여름까지 철군하겠다고 발표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아프간 전비는 2011 회계연도(2010년 10월~2011년 9월)에 1186억 달러(약 12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2001년 10월 아프간전 직후 궤멸 상태였으나 미국이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며 전력을 분산한 동안 세력을 회복했다. 탈레반은 지난달 28일 대담하게도 수도 카불의 심장부인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9명을 동원한 자살폭탄 공격을 벌여 13명의 민간인·경찰을 숨지게 했다. 아프간 정부는 자력으로 탈레반의 호텔 점거를 풀지 못했다. 사태는 결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무장 헬기가 나선 다음에야 5시간 만에 해결됐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미군이 철수할 경우 부패와 무능에 빠진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정부가 탈레반의 공세에 무릎을 꿇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오바마의 철군 발표 이후 미 정부는 탈레반과의 협상에 힘을 쏟고 있다. 탈레반을 아프간 정부 구성에 참여시켜 아프간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탈레반과의 협상은 탈레반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해 척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탈레반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는 척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는 ‘제2의 설날(테트) 대공세’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8년 1월 북베트남(월맹)이 단행했던 ‘설날 대공세’라는 기만전술을 탈레반이 모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북베트남군은 음력 설날을 맞아 일주일간 휴전한다고 발표해놓고는 이를 뒤집고 당일인 1월 31일 미군과 한국군, 베트남군 기지 등 남베트남 전역 100여 곳을 대대적으로 기습했다. 이 공격은 실패했지만 북베트남의 군사력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주면서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은 반전 여론 등에 밀려 73년 베트남에서 철군했다.

정재홍·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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