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오빠 탁신 업고 총리 예약 … 잉락 “많은 난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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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푸어타이당 총리 후보(가운데)가 3일 방콕에 있는 당사 앞에서 총선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있다. 푸어타이당은 이날 치러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해 잉락은 조만간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 [방콕 로이터=뉴시스]


태국에서 1932년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이후 첫 여성 총리가 탄생된다. 3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44)을 총리 후보로 내세운 야당 푸어타이가 압승했다.

 이날 오후 10시(현지시간) 현재 97% 개표 결과 푸어타이당은 전체 의석 500석 가운데 263석을 휩쓸었다. 절반(250석)을 웃도는 의석을 차지해 푸어타이당 단독으로 정부 구성이 가능하다. 총리는 약 1개월 뒤 의회에서 선출된다.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16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중간 개표 결과가 발표된 뒤 잉락은 “오빠와 통화를 했는데 우리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했다”며 “앞으로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피싯 총리는 "푸어타이당이 승리했다”며 잉락의 승리를 인정했다. 푸어타이당은 2006년 쿠데타 이후 해외로 도피한 뒤에도 도시 빈민층과 농민들로부터 여전히 큰 지지를 받고 있는 탁신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잉락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태국 북부 치앙마이로 이주한 중국계 집안에서 태어난 잉락은 치앙마이에서 나고 자란 본토박이다. 농촌 지역인 치앙마이에 대한 잉락의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해 선거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정치적 자산이 됐다. 치앙마이대에서 정치·행정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탁신의 집안 기업에서 경영 수완을 쌓았다.

 이번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는 기업 활동 외에 활발한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 사생활 등이 베일에 가려졌었다. 방콕의 한 외교관은 “몇 해 전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겸손이 몸에 배었고 자신을 낮추는 온화한 말솜씨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잉락은 평소 ‘집안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며 탁신의 정치적 재평가에 대한 의지를 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혼인 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기업가인 아누손 아몬찻과의 슬하에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잉락은 태국에서는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착실히 이미지를 쌓았지만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그는 하루에 8개 이상의 선거구를 휘젓고 다니며 푸어타이당 후보들을 지원했다. 탁신은 잉락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었다. 잉락은 “나는 탁신 친나왓의 여동생이다. 오빠를 생각해서 나에게 기회를 달라. 나의 오빠가 여러분께 ‘안녕’이란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유세전마다 강조했다. 탁신의 지지세가 강한 북동부 지역에선 잉락이 나타나면 지지자들과 구경꾼들이 몰려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잉락은 이번 선거에서 고집스럽게 ‘여성’ ‘화해’의 키워드를 반복했다. 방콕의 정치 소식통은 “민주당 등에선 탁신의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폄하했지만 유권자들은 잉락에게서 갈등을 치유하는 모성애를 읽었다”고 풀이했다.

방콕=정용환 특파원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 44세(1967년 6월 21일 생)
- 9남매 중 막내,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여동생
- 태국 치앙마이대 정치·행정학과 졸업
- 미국 켄터키 주립대학 정치학 석사
-‘ M-Link 아시아’ 사장인 사업가 아누손 아몬찻과의 슬하에 1남. 혼인신고는 하지 않음
- 태국 최대 통신회사 AIS의 전 대표이사
- 탁신 가문 운영 부동산회사 SC Asset의 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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