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메세나 활동이 낳은 차이콥스키 콩쿠르 쾌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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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토종’ 젊은 음악인들이 세계 최고 권위의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일을 냈다. 피아노 부문에서 손열음씨와 고교생 조성진군이 2, 3위를 기록했고 남녀 성악에서는 박종민·서선영씨가 나란히 1위를 차지했다. 이지혜씨도 바이올린에서 당당히 3위에 올랐다. 1958년 콩쿠르 창설 이후 한국인이 거둔 최고 성적이다. 성악 부문 남녀 동반 1위, 한국 국적 연주자의 피아노 2위, 고교생 입상, 바이올린 부문 수상은 모두 처음 세워진 기록이다.

 우리 대중음악계 젊은이들이 K팝(pop)으로 지구촌을 휩쓰는가 했더니 이번엔 ‘클래식 한류’다. 자랑스럽다. 젊은 세대의 거침없는 도전과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에서 한국인 스승을 사사(師事)한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를 석권한 것은 우리 클래식 음악이 이미 국제 수준이라는 뜻이다. 실기에 중점을 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학풍이 수상자 대량 배출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되새겨볼 만하다.

 우리는 특히 이번 쾌거의 밑거름 역할을 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에 주목한다. 수상자 중 서선영·손열음·조성진·이지혜씨는 ‘금호영재콘서트’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 등 이 재단의 음악영재 발굴 프로그램 덕분에 세계적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故) 박인천 회장이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슬로건 아래 창설한 문화재단을 박성용 회장은 2005년 작고할 때까지 심혈을 기울여 키웠다. 현 박삼구 회장도 “더도 덜도 말고 형님(박성용)만큼만 하겠다”며 일부 기업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 중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음악영재를 선발할 때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심사위원은 처음부터 배제해 실력과 장래성만으로 뽑는다고 한다. 또 영재 발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장학금·항공권 지원, 연주기회 제공, 고가(高價) 악기 무상 대여 등 장기적 안목으로 다양한 혜택을 베풀고 있다. 그 결과가 역대 최고의 콩쿠르 성적으로 나타났다. 차제에 정치권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메세나활동지원법 제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