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예를 표하고 먹는 명품 한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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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홍길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농학박사

몇 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없이 뻗은 도로를 운전하던 중 멀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시커먼 형체가 보였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것이 ‘블랙 앵거스’라는 품종의 소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아, 우리 축산은….” 우리와는 크게 다른 축산업의 규모에 압도된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지역에서도 꽤 유명한 목장이었다. 약 3만 마리의 소를 키운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한 농가가 평균 소 17마리를 키운다. 그러니 그 광경을 본 필자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규모가 다는 아니다. 일류만이 살아남는 무한경쟁 시대다. 스위스·독일 등의 최고가 명품시계 브랜드의 특징은 100% 수작업의 소량생산이다. 대량생산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우 역시 명품화가 생존 전략이다.

 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으로 정의돼 있다. 필자가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가 그 상품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우의 뛰어난 맛에 대해선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이미 일본의 세계적 명품 소 품종인 와규(和牛)와 견줄 정도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명품이 되기 위한 다음 조건으로 ‘이름난 물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을 위한 전략을 수립할 때다.

 ‘롤렉스’ 시계는 ‘스토리 메이킹’으로 유명해졌다. 1927년 영국의 여성 속기사 메르세데스 글리츠가 이 시계를 차고 15시간15분에 걸쳐 수영으로 영불해협을 건너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만큼 방수 기능이 완벽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1953년 존 헌트 경이 인솔하는 등반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때도 롤렉스가 함께했다. 심한 충격이나 온도변화를 견딘 것이다.

 서양의 소와 다른 한우만의 스토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서양의 소가 단순히 고기 생산이라는 인간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존재였다면, 우리의 한우는 ‘식구’였다. 한 지붕 아래서 인간과 같이 살았다. 정월대보름에는 한우에게도 오곡밥과 나물로 상을 차려주며 “한 해 농사를 잘 지어보자”고 격려했다. ‘황희 정승과 두 마리의 소’ 이야기는 어떤가.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느냐는 물음에 농부가 귓속말로 답했다는 우화에는 소에 대한 우리 조상의 배려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동물 복지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식구로 여기며 귀하게 키웠던 소가 한우인 것이다.

 반려동물과 달리 경제동물인 가축의 최종 사육 목적은 고기의 생산이다. 그러나 단순히 고기 생산의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생명존중의 철학을 바탕으로 귀하게 키운 고기를 먹는다는 자부심을 이야기에 담는 것이다.

 스토리만 있고 실질이 없으면 명품이 아닌 짝퉁이다. 우스갯소리로 명품가방과 짝퉁가방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비오는 날 가방으로 비를 가리면 짝퉁이고, 가슴에 끌어안으면 명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혼을 담아 키우고 가슴에 끌어안는 한우 고기를 생산해야 한다. 대규모 농장보다 ‘작지만 강한 농업(强小農)’의 규모에서 더욱 용이한 전략이다. 이 정도의 명품 한우라면 먹기 전에 예를 표하는 것도 새로운 음식 문화로 정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홍길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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