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수다의 알파, 맞장구는 수다의 오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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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16면

영화 39써니39의 한 장면. 과거의 친구들과 만나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수다다.

키케로의 '수사학' 첫머리엔 ‘화술의 법칙’이 소개됐다. “눈썹·눈·낯빛이 우리를 속이지만, 우리를 가장 잘 속이는 것은 말”이라고 설파한 키케로는 '내면을 반영한 외모칭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직접적으로 몸매·얼굴을 언급하기보다 미소·표정·손짓 등을 칭찬하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식이다.칭찬이 수다의 알파라면, 공감·경청을 표현하는 맞장구는 오메가다. 여성이 “정말요?” 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맞장구 치면, 선·소개팅 성공률이 두 배가 된다는 속설도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박영선 커플매니저는 “호감 사는 데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인 맞장구만 한 게 없다”고 말했다. 물론 지나치면 ‘가식적’으로 보인다.

상대 사로잡는 수다의 기술

맞장구·칭찬에 능해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연예인 이야기는 부담 없는 공감대를 만들지만 대화를 피상적으로 만들 위험도 있다. 7년차 연예부 기자인 조은별(32·여)씨는 “직업상 연예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처음에는 대화를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지만 나중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긋한 연령층에게는 학연·지연·군복무 같은 공통분모를 꺼내보는 것도 방법이다. 기수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법조인·정치인·의사·교수 등의 직군에서는 동기생 이야기도 좋은 화두다. 청소년들에게는 ‘자상한 관심’이 수다의 왕도(王道)다. 분당에서 중고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이규섭(29)씨는 학생 개개인의 변화를 관찰하고 화장품 브랜드, 연예뉴스를 꼼꼼히 챙겨본다. 이씨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게 대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매년 성과급이 1억원을 넘는 ‘보험왕’ 인 삼성생명 FC(재무 컨설턴트) 박동윤(37·여)씨는 고객 연령에 따라 수다 전략을 펼친다. ▶자녀 이야기 ▶학부모의 고충 ▶사는 이야기 ▶부모님과의 추억 등을 수다 주제로 삼는다. 박씨는 “수다는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원천이자 고객 인생 주기에 맞는 상품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에게도 고향 이야기가 통한다.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에 근무하는 김아영(27·여)씨는 중국인을 만나면 고향을 묻는다. “우한에 가봤는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난징에 꼭 가보고 싶다”라는 식으로 말을 건넨다.

매일 기자들과 대화하는 서울시청 성기연 메시지실장은 수다를 위해 예습을 한다. “우선 공통적으로 아는 기자들 근황 이야기로 시작해 기사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죠. 상대방에 대한 공부는 대화를 위한 첫걸음, 예습 같다고 할까요.” 그의 수첩에는 사람 정보와 주요 어록, 관심사가 빽빽이 메모돼 있다.

업무도 좋은 수다거리다. 연세대 초해상도영상처리연구실 권지용 연구원은 전공 분야인 신호처리를 화제로 꺼낸다. 권씨는 “사람들이 관심 갖는 3D(3차원) TV나 스마트폰 사진편집 애플리케이션 등에 쓰이는 전문 지식을 쉽게 설명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고 말했다.
웃음을 곁들인 수다는 ‘약’이다.'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웃음 치료'의 저자인 이임선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수다 예찬론자다. 이씨는 수다의 효용으로 ▶세로토닌 증가, 근육 이완 등 신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식욕·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며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부부는 서로 손잡고 칭찬하는 수다를 시도할 만하다. 이를 테면 “당신 눈이 너무 예쁜데”라고 말하면, “그럼, 눈이 멋지지”라고 답해주는 식이다. 복식호흡을 유도해 마음이 편안해지는 한편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웃음이 나오게 된다.

험담도 수다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요즘에는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가 발달해 본의 아니게 ‘뒷담화’를 당사자에게 전하는 ‘실수 아닌 실수’가 빈번히 발생한다. 대학원생 박상익(27)씨는 “선배에게 혼난 후 메신저로 선배 험담을 한다는 것이 그만 그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내버려 더 혼났던 적이 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다에서 본론으로 넘어가는 것은 수다쟁이 개인의 과제다. “많이 해봐야 자연스럽게 넘어간다”는 게 전문가들이 내놓은 정답이다. 스피치 강사인 신동윤 전 춘천MBC 아나운서는 ‘예능 프로그램’을 예로 든다. “예능에는 치고 들어갈 타이밍이 있잖아요. 수다도 마찬가지죠. 민감한 이야기를 무작정 꺼내는 게 아니라, 여유 있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수다 내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거나, 꺼내려는 본론과 관련된 유머를 던지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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