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왜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 자부심 못 느끼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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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14면

홍콩 봉황TV 선페이펑 선임 PD(왼쪽)와 양쥐안(楊娟) 사회자가 28일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한국전쟁 관련 행사를 취재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홍콩의 봉황(Phoenix)TV는 중국 대륙과 대만·홍콩, 동남아, 전 세계 화교 사회를 아우르는 중화권 위성TV 채널이다. 시청자가 150개국, 3억 명에 이른다. 봉황TV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TV드라마를 많이 방영해 중화권 한류(韓流) 바람을 선도했다. 봉황TV가 이번엔 한국의 경제 발전과 한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13일 상·하편으로 나눠 방송한다. 6·25 전쟁 61주년을 맞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비결을 소개하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시청자 3억, 홍콩 봉황TV 선임 PD 선페이펑

프로그램 제작차 지난달 20일부터 2주일간 방한한 선페이펑(沈飛峰) 선임 PD는 “한류의 원천을 찾아 나섰는데 결국 한국의 경제 발전 취재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제작팀은 지난달 25일 연평도를 취재한 데 이어 29일엔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와 도라전망대를 촬영했다. 홍콩에선 식신(食神)으로 불리는 음식평론가 차이란(蔡瀾)과 함께 서울의 맛집도 찾았다. 프로그램을 제작 중인 선페이펑을 지난달 28∼29일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 상륙한 ‘K팝’이 화제다. 홍콩에선 요즘 어떤가.
“한류는 이제 전 세계로 퍼져 가고 있다. 홍콩에선 ‘대장금’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와 K팝이 인기를 끈다. 봉황TV는 지금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방영한다. 홍콩에선 ‘공동경비구역 JSA’와 같은 한국 영화가 먼저 인기를 끌었다. 당시 홍콩의 드라마와 영화가 쇠락하는 시점이었는데 한국 작품들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국에선 과거 홍콩 영화들이 ‘홍콩 누아르’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홍콩에서 한류가 일어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한국 영화·드라마를 보면 스토리를 엮어내는 능력과 기법이 탁월하다. 한국 드라마의 특징은 가정과 인간 관계를 굉장히 존중한다. 중국인 입장에서 보면 복고적이고 친숙한 느낌을 받는다. 더 깊이 들어가면 과거에 일본 문화가 홍콩·동남아에서 유행했던 것과 배경이 같다. 국력이 커지고 커진 국력을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한류 원천을 찾다가 결국 한국의 경제성장에 주목하게 됐다.”

-홍콩도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경제 발전을 이루지 않았나.
“홍콩과 한국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르다.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점은 비슷하다. 교육과 가정, 근면·성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홍콩은 이민 사회다. 외부 세력의 위협적 상황에 직면하면 한국은 놀라울 정도의 응집력을 보이지만 홍콩은 그렇지 못하다. 홍콩 사람들은 한국인의 역동성에서 감동을 느낀다. 또 홍콩은 97년 중국에 반환되면서 산업구조 조정이 필요했는데 그게 한국처럼 빠르게 이뤄지지 못했다.”

-홍콩에서 한국 이미지는 어떤가.
“일본과 한국이 인기 있는 나라다. 드라마·가요·영화는 물론 화장품과 의류 등 일상생활에 한류가 깊숙이 배어 들었다.”

-실제 한국에 와보니 어떤가.
“한국의 역사는 무겁다. 외침(外侵)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에게 친절하고 개방적이다. 한국인의 핵심 가치가 정(情)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정다감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 중인가.
“역사와 인문학을 통해 한국을 깊이 있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중국인과 전 세계 화교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리려는 것이다. 준비에만 6개월이 걸린 대형 프로젝트다.”

-한국의 발전 계기는 뭐라고 보나.
“그걸 찾고 있는 중이다. 1945년 해방 뒤, 특히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어떻게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가 큰 관심사다. 우리는 민주화의 역동성이 경제 발전에 긍정적 힘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국민 생활수준을 높이고 인간 가치를 실현하려면 경제 발전과 함께 정신의 해방을 의미하는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문화적 배경과 역대 대통령, 민주화 운동에 대해 취재하고 있다.”

-DMZ를 둘러본 소감은 어떤가.
“서울과 평양을 세 차례씩 방문했다. 2009년 북한에서 남측 자유의 집을 봤다. 그땐 남쪽의 서양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엔 남쪽에서 북측 판문각을 바라봤다. 중국인 여행객이 많았다.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그러지 말라고 들었다.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이란 것이다. 굉장히 가까운 길이지만 60여 년간 아무도 그 길을 넘나든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숙연하고 황당한 마음이었다. 지척천하황당(咫尺天下荒唐)이란 말이 떠올랐다. 고통과 무기력감을 느꼈다.”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나.
“2009년 북한을 방문해 ‘조선기행 2009’를 만들었다. 4월 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에 들어 갔는데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긴장감이 컸다. 북한의 여러 곳을 다녔고 DMZ도 둘러봤다. 북한 사람들이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아무런 평가 없이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AIB(Association of International Broadcasting)에서 2010년 우수상을 받았다.”

-남북한을 모두 둘러보니 어떤가.
“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 바깥 세계가 평가하는 것보다 자부심을 덜 느끼는 것 같다. 많은 한국인은 ‘해방 정국’에서 미국의 간섭이 없었다면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돕지 않았다면 한국은 북한에 의해 통일됐을 것이다. 북한에 의한 통일이 정말 한국인들이 원하는 사회일까라는 점엔 의문이 든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 건국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홍콩은 관광천국이다. 관광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홍콩은 그저 쇼핑 천국이다. 한국은 호주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호주는 원시림과 자연생태 체험을 가진 생태관광의 천국이다. 비록 한국에 호주와 같은 사막은 없지만 호주처럼 수려한 자연환경과 뛰어난 풍광을 갖고 있다. 게다가 맛있는 한식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관광 포인트가 뚜렷하지 않다. 한국 고유의 특징을 좀 더 강조하고 세계적으로 지명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한식 세계화도 이번 프로그램에서 다루는가.
“청담동의 어떤 식당에서 한식을 먹었는데 음식마다 역사적 스토리가 있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문화와 스토리를 먹는 느낌이었다. 한국인이 왜 그런 음식을 그런 식으로 만들어 먹었는지, 먹으면 어떤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지 설명을 들었다. 예컨대 방게 튀김이 있었다. 조그맣게 튀긴 방게를 동그란 모양의 노란색 소스에 찍어 먹었다. 방게는 보름달에 교미해야 몸집이 큰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노란색 소스는 보름달이었다. 막걸리를 처음 마셔 보았다. 옛날엔 보통 사람들이 술을 먹기 힘들어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쌀로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실 때마다 소박함과 친근감을 느낀다. 삼계탕과 울릉도의 따개비밥도 좋았다. 한식은 음식과 함께 다양한 스토리를 파는 게 좋겠다.”

-다른 나라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만드나.
“한국에 대한 여러 방향의 다큐물을 더 만들 생각이다. 한국의 발전을 다양한 방법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고 북한과 비교해 보고 싶다. 봉황TV엔 여러 가지 음식 소개 프로그램이 있다. 스토리가 있는 한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하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한국에 와서야 한국이 미식 천국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매일 과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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