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바덴바덴에서 더반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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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진홍
논설위원

# 30년 전인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줄곧 열세였던 대한민국 서울은 놀랍게도 52표를 얻어 27표를 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극적으로 제치고 88년 여름 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선정됐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전쟁과 고아의 나라’에서 ‘기적과 번영의 나라’로 온 세계에 새롭게 각인됐다. 그것은 칙칙한 과거를 떨치고 창창한 미래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의 용틀임이었다.

 # 그 후 비록 공동 개최였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4강 신화를 이뤄낸 대한민국은 그 여세를 몰아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2010년 겨울 올림픽 유치를 위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1차 투표에서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평창이 51표를 얻어 40표를 얻은 캐나다 밴쿠버와 16표에 그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2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53대 56으로 3표 차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참으로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인구 4만 명 남짓했던 강원도 평창이 당돌하리만큼 당차게 겨울 올림픽 유치에 나선 첫 결과 치고는 되레 우리 스스로를 놀라게 한 성적이었다. 게다가 지난해 2010 밴쿠버 겨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역대 최고인 종합성적 세계 5위에 오르면서 개최권을 빼앗겼던 아쉬움을 깨끗하게 설복했다.

 # 2007년 7월 6일 강원도 평창은 해가 떠도 해가 없는 것 같았다. 남미의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이번에도 4표 차로 역전 당해 2014년 겨울 올림픽 개최권을 러시아의 소치에 빼앗긴 탓에 평창은 졸지에 ‘아침에 눈을 떠도 할 일이 없는 곳’이 돼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 날짜 본란에 ‘혼이 담긴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제목 아래 이렇게 썼다. “… 여기서 그칠 순 없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고 여기서 포기해서도 안 된다. 다시 도전해야 한다. 파헤쳐놓은 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동안 순절하게 바쳐온 간절한 염원과 그 노력들이 눈에 밟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 두 번 안 됐다고 포기하면 애초에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세 번 아니라 될 때까지 하겠다는 각오로 다시 뛰어야 한다. … 평창은 우리의 자존심이고 우리의 순절한 혼의 대명사다. … 더욱 혼신의 노력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해서 밴쿠버에게 빼앗긴 4년, 소치에게 빼앗긴 8년까지 모두 한꺼번에 되갚아줘야 한다. …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 낙담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포기야말로 국민에 대한 배반이고 낙담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배신이다.”(2007년 7월 7일자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 또 4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지났다. 이제 며칠 후면 우리는 다시 남아공 더반에서 2018년 겨울 올림픽 개최지 최종 결정의 심판대에 선다. 정말이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심경이다. 4년 전엔 다신 이런 시간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를 쓰고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왔다. 세 번의 눈물은 없다! 두 번의 눈물도 마른 지 오래다. 이제 남은 것은 환호다! 37년 전 홍수환 선수가 아널드 테일러를 누르고 세계 밴텀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던 바로 그 더반에서 ‘평창, 코리아!’가 울려퍼지게 한마음으로 기원하자! 평창에서 시작된 작은 꿈이 강원도의 꿈을 넘고 대한민국의 꿈을 넘어 이제 세계인의 꿈이 되도록 온 국민의 기운을 모으자!

 # ‘삼세번’이란 말이 있다. “세 판째는 된다. 반드시 된다!” 이렇게 주문 외듯 마음으로 염원하면 반드시 된다. 온 국민이 기를 모아야 할 때가 지금이다. 평창 겨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을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분명한 기회다. 오는 6일 더반에서 ‘88 서울 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에 이어 2018 평창 겨울 올림픽’까지 ‘트리플 크라운’의 위대한 30년 사이클이 완성되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