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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돈'으로 보는 병원, 여의사의 '카메라 고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직 의사가 병원의 장삿속을 파헤치는 ‘하얀정글’이란 다큐멘터리를 발표해 화제다. 3월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을 타며 처음 알려진 이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전파되고 있다. 또 이를 본 관객들을 중심으로 “극장으로 보내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송윤희 감독

◇“환자를 돈으로 보는 병원은 하얀정글”=산업의학과 전문의 송윤희(33)감독이 만든 하얀정글은 '환자=돈'으로 보는 병원들의 장삿속을 고발한다. 송 감독은 “개인병원이든 종합병원이든 할 것 없이 상업성에 물들어 정글처럼 변해 가고 있는 병원의 실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사례들은 영화 안에 녹아 있다.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싼 검사보다는 환자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비싼 비급여 검사를 권한다. 로봇수술도 이런 장삿속으로 고발된다. 한 병원 관계자는 “위암 수술에 코디네이터가 로봇 수술을 추천한다”며 “위암 수술 후 끔찍하게 꿰맨 자국을 보여주면 환자는 아무리 비싸도 로봇 수술을 선택한다”고 고백한다.

많은 대형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매일 문자로 외래 환자 수를 알리고, 의사들의 수익 실적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발표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의사는 “나도 모르게 ‘오늘 검사 몇 건이네, 월급을 얼마 더 받겠네’하고 세어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의사인 나조차 몰랐던 수익성 의료행위가 큰 병원에서도 공공연히 있었다”며 “진짜 ‘30초 진료’가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 대형 병원이 3시간 동안 환자 300명을 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정말일까 싶어 ‘몰래 카메라’로 환자 한 명을 보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40분간 지켜봤다. 결과는 평균 31초였다. 그녀는 “몰래 카메라가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우리 의료계의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스틸사진]



◇700만원 들인 다큐멘터리 큰 반향=현직 의사인 그녀가 ‘누워서 침 뱉기’ 격인 다큐멘터리를 찍은 이유가 뭘까.

“남편도 의사인데 어느 날 돈 몇만 원이 없어 당뇨약을 못 먹고 합병증까지 온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너무 걱정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의료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또 다른 이유로 그녀는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의 폐해를 다룬 ‘식코’만 해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우리나라도 의료계의 현실을 알릴 수 있는 대중적인 콘텐트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찍는 동안 병원으로부터 압력이 없었을까. 그녀는 “원래 병원에서는 어떤 촬영이든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난 허락 안 받고 몰래 찍었다. 아마 환자들 보느라 너무 바빠서 촬영하는 줄도 몰랐을 거다”고 말했다. 또 “아무래도 의사라 주변에서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더 쉽게 들을 수 있었고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얀정글’은 카메라 구입비 등을 포함해 제작비 700만원이 들었다. 예산이 부족해 기획·구성·나레이션·편집까지 감독 혼자 했다. 당연히 배급사도 없고 돈이 많이 드는 극장 상영은 어렵다. 대안으로 공동체상영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단체에서 요청하면 DVD나 파일 등을 보내 상영하는 '찾아가는 영화관' 형식이다.(문의 02-334-3166)

최근에는 병원이나 인권영화제, 보건의료단체에 상영 요청이 들어왔고, 지난달 8일에는 국회에서도 상영했다. 송 감독은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상 콘텐트이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이 영화를 극장으로 보내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배급사의 이상협 팀장은 “저예산 다큐멘터리 가 공동체 상영이나 DVD 판매, 온라인 다운로드 서비스 등 다양한 경로로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됐다”며 “예전에는 영화제에서 몇 번 틀고 나면 창고로 들어가 관객과 만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심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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