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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101> 리처드 기어의 깊은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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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주 서울 예술의전당 VIP룸에서 할리우드 톱스타 리처드 기어(62)를 만났습니다. 기어는 화선지에 기념 사인을 했습니다. 먹을 듬뿍 찍은 붓을 들고 영어로 ‘Richard Gere’라고 썼죠. 그리고 혜민(慧敏·미국 햄프셔대 종교학과 교수) 스님과 사인지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멋쩍은 표정의 기어는 작은 목소리로 “You don’t have to do this. (스님께선 이걸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형식이나 포장보다 알맹이를 중시하는 기어의 성향이 엿보이더군요.

 잠시 후 대담이 시작됐습니다. 방에는 고요가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가르며 혜민 스님과 리처드 기어 사이에 문답이 오갔습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기어는 매일 1시간 이상씩 불교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명상을 빠트린 ‘딱 사흘’을 일일이 기억할 정도입니다. 그날 무슨 일로, 왜 좌선을 못했는지 말입니다.

 혜민 스님이 물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경전 구절이 있나?” 기어는 “너무 많다”며 “내가 받은 가장 큰 가르침,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바랍니다’라는 보살의 원(願)이다. 일상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그 원을 계속 자신에게 리마인드(remind)한다”고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모든 사람이 행복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나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 상대의 기대는 수시로 충돌하죠. 그때는 어떡해야 할까요. 기어의 해법은 이랬습니다. “모두가 행복하려면 ‘나’가 없으면 된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할 때 가능한 나 없이 하려고 한다. 무아(無我)의 바탕 위에서 하려고 한다. 그런 보살심이 없다면 우리가 수행을 통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다고 해도 전혀 도움될 건 없다. 그건 결국 자신의 에고만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기어의 눈은 무척 깊었죠.

 리처드 기어 때문에 불자(佛子)가 된 할리우드 스타들도 있습니다.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은 기어의 주선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부디스트다. 나는 삶의 길에서 붓다의 현실적 가르침을 믿는다. 나는 그분의 제자다”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가수 겸 배우인 제니퍼 로페즈도 기어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로페즈는 미국판 리메이크 영화 ‘쉘 위 댄스’에서 기어와 함께 출연했죠. 당시 로페즈는 “나는 너무 강한 것이 문제”라며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기어는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강해지라”고 조언했습니다. 기어는 “불교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로페즈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가 믿는 종교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영성적으로 항상 진지한 그(기어)의 자세가 참 좋다. 그는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말을 하는 능력이 있다”고 기어를 평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부디스트가 됐습니다. 이 밖에도 감독 올리브 스톤·조지 루카스, 배우 앤절리나 졸리, 키애누 리브스, 가수 티나 터너·엘라리스 모리셋 등이 부디스트입니다.

 기어의 부모는 독실한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기독교적인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예수님의 사랑’을 말했습니다. 기어는 “부모님은 늘 열려 있는 사랑, 포용하는 사랑을 말씀하셨다. 그렇게 끝도 없이 큰 사랑, 그게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하셨다. 덕분에 불교의 자비 사상이 저와 더 쉽게 통합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혜민 스님이 “종교가 다르면 갈등을 빚기도 한다”고 물었습니다. 기어는 “불교인도 문제가 있고, 기독교인도 문제가 있다. 진정한 불교 지도자, 진정한 기독교 목사라면 포용적인(Inclusive) 사랑이어야 한다. 그런 사랑과 자비를 더 기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종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불교를 믿느냐, 기독교를 믿느냐를 따지지 않더군요. 그 사람 안에 무엇이 흐르는가를 보더군요. 껍질이 아니라 알맹이를 보는 눈, 리처드 기어의 깊은 눈. 그건 구도자의 눈이었습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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