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네덜란드병’ 걱정하는 카자흐스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이준승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KISTEP)원장

지난달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제4차 ‘아스타나 경제 포럼(Astana Economic Forum)’이 열렸다. 아스타나 경제 포럼은 카자흐스탄 정·관·재계 인사 4000여 명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 4명과 유럽연합,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세계경제포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고위 관계자와 해외 전문가 1000여 명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경제 포럼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이번 포럼에서는 제6차 국제혁신회의도 동시에 진행됐다. 이 회의가 부총리 겸 산업신기술부 장관인 이세케셰프의 환영인사로 시작된 것만 봐도 카자흐스탄 정부가 국가혁신 시스템을 갖추는 데 있어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국제혁신회의 첫 세션에서 필자는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및 국가혁신 시스템’을 소개했다. 세션이 종료된 후 카자흐스탄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중앙아시아 과학기술·환경·보건 분야를 총괄 담당하는 1등 서기관 브루스 허즈페스는 “카자흐스탄이 본받을 과학기술 혁신시스템은 구미 선진국의 모델이 아니라, 아시아의 빛나는 별 한국”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은 세계 9위의 영토대국이다. 또 자원 가채매장량 부문에서 우라늄 세계 2위, 석탄 세계 7위, 원유 세계 9위, 천연가스 세계 18위에 이르는 자원대국이다. 금·구리·철광석을 포함한 원소주기율표 상의 거의 모든 금속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축복받은 국가다.

  최근 이 나라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바로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에 걸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해 7월 제5차 국제혁신회의에서 만난 국가혁신재단의 아이딘 쿨세이토브 의장은 “카자흐스탄은 자원 고갈에 따라 도래할 네덜란드병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과학기술을 근간으로 지난 40년간 고속성장을 경험한 한국의 연구개발(R&D) 시스템과 노하우가 우리에겐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병’이란 유전(油田)과 같은 천연자원 개발로 국가 경제가 단기적으로 호황을 누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임금상승 등 부작용이 발생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비효율성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인적자원이 최대의 무기인 한국과는 달리 천연자원이 풍부한 자원부국이라면 경계해야 하는 현상이다.

 천연자원 저주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 카자흐스탄 국가혁신재단은 지난해 9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 과학기술정책 기본체계 설계에 대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원부국 개도국은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국가 상황에 맞는 소위 ‘맞춤형 개도국 과학기술 공적원조’를 원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한국이 보여준 초고속 경제성장의 배경이 과학기술에 있다는 데 공감하고 한국의 무형적 노하우와 지적 경험 전수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한국도 대외원조 사업을 그저 유형 자본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지 말고 두 나라 간 경험 공유를 통해 경제개발협력과 발전을 도모하는 ‘윈윈 전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도국의 기술능력, 소득수준, 우선수요 등 개도국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국가별 실정에 맞는 산경험 전수가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자원부국 대상의 무형자산 원조는 자원외교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준승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