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가보다 5000억 더 쓴 셈” 시장선 ‘승자의 저주’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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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인수전은 많은 흥행을 연출했다. CJ는 대한통운 인수를 저울질했던 기업 중 최약체로 평가됐으면서도 결국 본입찰 승리를 거머쥐었다. 산업은행과 노무라는 실사를 거쳐 7월 중 CJ 측과 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당초 인수전은 올 3월 예비입찰에 포스코·CJ·롯데가 참가하면서 3파전으로 진행됐다. 그러다가 입찰 마감을 나흘 앞둔 23일 포스코가 삼성SDS와 손잡고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포스코의 우위가 굳어지는 듯했다. 자금력에서 앞선 데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J의 인수자문사로 활동해온 삼성증권이 CJ 측에 인수자문 계약 철회를 통보했다. 대한통운 인수 의지를 불태웠던 롯데는 인수 대상에서 금호터미널이 빠지자 대한통운에 매력을 잃고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2파전으로 좁혀지긴 했지만 CJ는 절대 열세로 여겨졌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CJ의 베팅을 자극했고, 가격 요소가 좌우하는 입찰전의 승자는 결국 CJ가 됐다.

 그러나 시장에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시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 보유한 대한통운 지분 37.6%를 인수하는 데 경영권 프리미엄을 합쳐 1조5000억~1조7000억원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CJ가 재무적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 9.6%를 합쳐 47.2%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CJ가 써낸 2조2000억원 선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대한통운 주당 가격을 20만원 선으로 잡은 것으로, 28일 대한통운 종가 11만1000원에 비하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김주희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인수가격이 2조원이 넘었다면 시장 가격보다 5000억원 이상 더 써낸 것”이라며 “무리한 베팅에 대해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CJ그룹 관계자는 “CJ제일제당에 삼성생명 주식 459만 주가 남아 있고, 공장 부지 등을 팔아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며 “자금 조달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대신증권 김용식 연구위원은 “현금성 자산과 삼성생명·에버랜드 같은 자산이 상당해 순차적으로 처분, 5000억원 정도만 추가로 조달하면 될 것”이라며 “CJ의 재무건전성이 좋아 승자의 저주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한편 증시는 CJ의 우선협상자 선정 소식에 우려감을 나타냈다. 대한통운은 전날보다 14.94% 떨어졌고, CJ는 9.88% 하락한 7만3000원을 기록했다.

김태진·심재우 기자

◆승자의 저주=기업 인수합병(M&A) 때 높은 가격을 써내 인수한 기업이 그 후유증으로 재무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일컫는 말.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쓴 책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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