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난 여자 … ’ 모델은 나의 어머니…평생 농삿일로 손이 나무껍질 같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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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희망문학상 대상 김용희씨. [김태성 기자]

우리 시대 농어촌 현실을 문학으로 돌아보고 도농(都農)간 거리를 좁히자는 취지로 올해 제정된 농어촌희망문학상. 그 첫 대상은 뜻밖에도 기성 평론가에게 돌아갔다. 시는 물론 대중문화에도 관심을 보여온 문학평론가 김용희(48·평택대 국문과 교수)씨가 주인공이다. 김씨는 2009년 『란제리 소녀시대』, 2010년 『화요일의 키스』 등 장편소설을 두 권이나 낸 적이 있다. 몇 해 전 써둔 ‘수염 난 여자 이야기’로 이번에 단편소설 부문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뒤늦게 정식 등단해 ‘객관적인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상금은 2000만원. 함께 진행된 시 부문에서는 당선자가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기쁘면서도 두렵다”고 소감을 밝혔다. 자신에게 “과분한 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역량의 90%를 소설 쓰는 데 쏟겠다”고 했다. 평론을 당분간 접고 창작에 전념하겠다는 얘기다.

 우리 문단에서 평론가의 창작 겸업은 흔치 않다. 당장 시 쓰기와 평론을 겸하는 권혁웅씨, 시·소설·평론을 아우르는 이장욱씨 정도가 떠오른다. 김씨는 “평론은 결국 2차 텍스트 아닌가. 평론을 쓰면서도 삶이라는 것과 생생하게 만나고 싶다는 갈급함 같은 게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욕구에 응해 머뭇거리며 소설에 손 댄 게 벌써 10년쯤 전이다. 장편 말고도 써놓은 단편이 일곱 편이고 지난해에는 계간문예지 ‘작가세계’에 그 중 한 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이화문학회에서는 시를 썼다.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창작에서도 장르 불문이다.

 당선작 ‘수염 난 여자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읍 단위의 시골마을에 살았던 수염 난 여자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포악한 의붓 오빠에게 끔찍하게 학대 받던 여인은 시집온 후 그야말로 억척스러운 생산력을 발휘한다. 그러던 중 여인의 턱에서는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라난다. 김씨는 이런 얘기를 열 네 살 소녀의 은밀한 시선을 통해 감칠맛 나게 풀어낸다.

 김씨는 “야생의 여자를 그리고 싶어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문명사회가 강요하는 매끈매끈하게 제모(除毛)된 피부가 아니라 터럭 많은 기이한 모습의 여성을 통해 새끼를 따듯하게 보듬는 털짐승처럼 강건하고 성숙한 여성을 묘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여인의 모델은 다름 아닌 김씨의 시어머니다. “경북 예천에서 평생 농사를 지은 시어머니의 나무껍질 같은 피부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착상이 기발하고 서사구조도 깔끔하지만 무엇보다 탄력성 있는 문장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농어촌희망문학상은… 올해 제정, 시 2643·단편 278편 응모

농어촌희망재단(이사장 박덕배)이 주최하고,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 김종회)가 주관한다. KRA(한국마사회)와 중앙일보가 후원한다. 시 부문에는 621명의 2643편, 소설 부문에는 274명의 278편이 각각 응모됐다. 소설 우수상에 문부일씨의 ‘우리들의 작업 반장님’, 김개영씨의 ‘흙비’, 채순금씨의 ‘일자무식이도 면허 딸 수 있다고 혀서 왔어라우’ 세 편이 뽑혔다. 시 부문에선 박은영씨의 ‘쑥’, 이병일씨의 ‘저공비행’, 권여원씨의 ‘망둥어 깃발’ 세 편이 당선작 없는 우수상으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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