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또 올라” 김석동 - 이규성 외환방패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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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금융위원장(左),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右)


“글로벌 금융위기는 앞으로도 10년 주기로 계속 밀어닥칠 공산이 크다. 지금 같은 시스템으론 또 당할 수밖에 없을 테니 근본 대응책을 마련해 보자.”

 지금부터 1년 반 전인 2010년 초 이규성 KAIST 초빙교수(72·전 재정경제부 장관)와 김석동 금융위원장(58·당시 농협경제연구소 대표)이 의기투합했다. ‘외환위기 해결사’(이규성)와 ‘영원한 대책반장’(김석동)은 민간 자율의 ‘외환시스템 발전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국내외 학계·관계·업계의 외환 부문 최고 전문가 25명이 뜻을 같이했다. 연구비용은 이 교수가 몸담고 있는 KAIST 금융공학연구센터가 댔다. 이 교수는 15회에 걸친 세미나에 빠짐없이 나와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토론했다. 김 위원장은 올 1월 공직에 복귀하기 직전까지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물이 곧 공개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외환시스템의 중장기 발전방안’이란 이름의 보고서다. 발표와 토론을 위한 심포지엄이 7월 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이 교수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위기의 쓰나미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며 “위기가 또 와도 충격을 작게 받으면서 단기간에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복원력을 확보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실천 가능한 최고의 처방들이 망라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민간 시절 연구했던 것이라 민간 자율의 취지를 존중해 심포지엄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며 말을 아꼈다.

 보고서는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위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외환시스템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서 출발했다. 실물경제의 덩치가 세계 10위 수준으로 커졌지만, 외환시스템은 과거 국가주도 개발시대의 ‘꼬마시장’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반성이다. 그렇다 보니 ‘이번엔 다를 것’이라던 2008년 위기 때도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근본 문제는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도 막상 위기 상황에선 ‘감소의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현실 ▶국제 거래에서 태환성이 없는 원화의 원죄 ▶시장조성자 역할을 포기하고 중개자 위치에 안주하다 일만 터지면 정부에 손을 벌리는 국내 은행의 행태 등으로 요약됐다.

 해결책은 다섯 가지 방향으로 제시됐다. 외환 관리시스템과 원화 국제화, 외환시장 구조, 규제·감독, 거시경제정책 등이다. <그래픽 참조>

 먼저 국가 주도의 외환집중 관리시스템을 민간(금융회사) 주도의 외환분산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외화 유동성 충격에 맞설 복원력을 금융회사 스스로 확보하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선 국내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가 현지 예금을 유치하는 등 외화자산을 자체적으로 확보·운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국내 외환시장의 주된 자금 공급자가 외국계 은행이 돼선 외환공급의 ‘홍수와 가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론 국민연금의 적극적 역할이다.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제2선의 외환보유액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9%대인 해외자산 비중을 외국의 공적 연기금(20~30%대) 수준으로 높이면 외환시스템이 한결 강해진다는 것이다. 정부의 외환보유액은 외환시장의 최종 대출자 기능을 넘어 한반도 안보위험에 대처 가능한 수준으로 꾸준히 확충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원화의 국제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았다. 정부가 환투기 위험과 환율 변동성 확대를 걱정해 자꾸 미루고 있지만, 정면 돌파하지 않고는 원화가 국제결제 무대에서 영원한 변방 통화에 머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위안화의 국제화가 빨라지는 상황을 감안할 때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과 관련해서는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2008년 2~9월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게 한국 외환시장이 공격받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정부는 여전히 민간을 신뢰하지 못하고, 민간은 정부 규제를 온실 삼아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며 “민간이 앞으로 나서고 정부가 밀어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과도한 수출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내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서둘러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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