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
경제선임기자
법무법인 태평양은 로펌 업계에서 후발주자로 통한다. 김인섭 변호사의 개인법률사무소(1980년 설립)에 86년 이정훈·배명인 변호사가 합류해 로펌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한 게 태평양이다. 영문 이름은 세 변호사의 이니셜을 따 bkl(Bae, Kim&Lee)로 쓰고 있다.
이정훈(64) 태평양 대표변호사는 송무 중심이었던 작은 법률사무소를 기업 인수합병과 국제중재, 금융·증권 등에 강한 국내 2위의 법률 토털서비스 업체로 도약시킨 장본인이다. 이 대표는 태평양의 고성장 비결에 대해 “항상 고객 가치와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인재를 키우고 밤 12시라도 고객이 부르면 달려가는 자세로 일하다 보니 신뢰가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시장 개방 문제에 대해 뜻밖에도 “국내 로펌들이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글=김광기 경제선임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다음달 1일이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국내 법률시장 개방이 시작된다.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만이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방에 대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해 육성하고 경영시스템도 개편했다. 사실 1단계 개방에선 외국 로펌이 국내 변호사를 스카우트할 수 없게 돼 있다. 문제는 외국 로펌이 국내 변호사를 고용하는 5년 뒤의 3단계 개방이다. 변호사를 대거 빼앗기는 국내 로펌은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 결국 인재 싸움인데, 우리는 이길 자신이 있다. 태평양은 국내 로펌 중 변호사 이직률이 가장 낮다.”
-법률시장 개방은 국내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텐데.
“법률서비스의 선택 폭이 넓어지는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꼭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기업 정보의 유출 위험이다. 외국 로펌들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고급·비밀 정보를 엄청나게 확보할 것이다. 이를 눈에 안 띄게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국내 영업을 폐쇄한 뒤 정보를 갖고 나가는 것도 막을 길이 없다. 우리가 경쟁력 포인트로 윤리경영과 신뢰의 기업문화를 내세우는 이유다.”
-태평양은 M&A업무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1위를 놓고 김&장과 공방이 치열하다. 비결은 뭔가.
“단순한 법률자문에 머물지 않고 딜이 꼭 성사되도록 토털 서비스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고객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섬세하게 조언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태평양은 국내 기업의 해외 M&A를 지원하는 아웃바운드 M&A팀을 국내 처음으로 출범시켰다. 그 결과 STX그룹의 노르웨이 조선사 야커야즈 인수와 CJ홈쇼핑의 인도 진출 등 프로젝트를 잇따라 성사시킬 수 있었다. 태평양은 해외 업무 강화를 위해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무소를 설립했고, 베트남과 두바이 진출을 검토 중이다.
-태평양은 국제중재 쪽에도 강하다는데.
“현대오일뱅크의 국제중재 집행 판결에서 이긴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부다비 주주 측이 지분의 70%, 무려 2조5700억원어치를 현대중공업에 처분하게 만든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중재 사건이었다. 우리는 중재판결은 물론 경영권 인수에 필요한 제반 법률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을 되찾도록 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내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공격받고 있다. 불공정 거래 관련 송사도 늘어날 것 같은데.
“거래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 재벌들이 알아서 준법 경영과 윤리 경영, 사회적 책임 등을 실천해 줬으면 한다. 기업과 부자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경제도 선진화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익의 사회환원에 너무 인색하다. 법이란 게 뭔가? 국회가 법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고려하는 변수가 국민정서다. 기업이 오래 성장하려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전관예우 금지법으로 로펌들이 공직 출신자들을 고문 등으로 영입하기 힘들어졌다. 대응 방안이 궁금하다.
“로펌의 고문 제도는 각계에서 전문성을 쌓은 분들의 역량을 활용해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법률 서비스의 범위는 넓게 봐야 한다. 법조문만 잘 아는 것으론 부족하다. 외국 로펌들을 봐도 장관급 등 공직자 출신이 즐비하다. 우리는 애당초 로비스트나 브로커 역할로는 고문을 쓰지 않았다. 전문 서비스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유능한 비변호사들을 고문으로 계속 영입할 생각이다.”
-태평양은 공익활동에도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공익에 대한 기여는 전문가의 또 다른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구성원의 공익활동을 장려한다. 2002년엔 공익활동위원회를 공식 구성해 현재 4개 팀(난민·이주외국인팀, 사회적기업팀, 탈북민팀, 장애인팀) 총 60여 명의 변호사가 참여 중이다. 탈북민과 이주 외국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무려 법률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정훈 대표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제 11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기)에 합격한 뒤 2년간 검사 생활을 했다. 미국 유학 길에 올라 노터데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을 출범시킨 뒤 국제 거래 및 중재, 기술도입, 합작, M&A 등 분야를 지휘하며 법인을 급성장시켰다. 우루과이라운드(UR) 전문직업서비스 협상 대표로 활약하기도 했다. 법무부 외국법자문사법 제정 특별분과위원장, 대한중재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좋아하는 음식 칼국수
● 즐겨 입는 양복 기성복(특별한 브랜드 없음)
● 즐겨 신는 구두 발리(Bally)
● 자주 매는 넥타이 청색(특별한 브랜드 없음)
● 즐겨 마시는 술 맥주
● 승용차 렉서스 460
● 좌우명 항상 바르게 살자
태평양은 …
1980년 김인섭 변호사 법률사무소 개소
1986년 태평양 합동법률사무소로 개편
1987년 법무법인으로 조직 개편
2004년 중국 베이징사무소 개소
2007년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 개편
2008년 중국 상하이사무소 개소
● 변호사 수 : 내국인 252명, 외국인 35명
● 운영철학
가치경영(이익보다는 의(義)를 추구)
인재경영(경쟁력 원천은 인재, 변호사 최저 이직률)
선진경영(공정하고 투명한 파트너십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