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공짜 PC’

중앙일보

입력

1∼2년 약정하면 프린터·스캐너도 제공

1백원짜리 PC가 등장했다. 데이콤의 공동 사업자인 스피드로(Speedro)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면 단돈 1백원에 PC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프리(Free) PC로도 불리는 무료 PC는 사실 일부 PC통신사나 인터넷 서비스업체 등에서 이미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공짜’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보통 2만8천∼4만원씩 내는 월 이용료 외에 9천∼2만9천원씩의 PC 부담금을 비롯해 보증 보험료와 PC 실비 보험료 등 각종 비용을 추가로 부담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에 잠깐 바람이 불었다가 현재는 주춤한 상태다. 소비자로부터 ‘이름만 프리(free)인 할부판매’라는 일종의 판정패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데이콤 천리안과 현주컴퓨터는 공동 마케팅의 일환으로 인텔 셀러론 3백66㎒(월 4만2천원)와 펜티엄Ⅱ 4백㎒(월 6만3천원), 펜티엄Ⅲ 4백50㎒(월 7만3천원, 이상 모두 약정 기간 3년) 등 3가지 상품을 내놓아 20여일 만에 4천여 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하이텔과 삼보컴퓨터(하이텔 PC플러스), 나우누리와 대우통신(프리 PC), 유니텔과 삼성전자가 각각 짝을 지어 상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이텔 PC플러스’는 3∼4년간 월 4만9천3백∼8만3천2백원을 내면 삼보컴퓨터를 받고 PC통신을 이용할 수 있다. 기종은 셀러론 3백㎒(노트북), 셀러론 4백㎒, 펜티엄Ⅲ 4백50㎒ 등 3종류. 나우누리의 경우엔 3년간 월 4만5천8백원을 내면 대우통신의 셀러론 4백㎒와 PC통신 무료이용권을 제공한다. 펜티엄Ⅲ 4백50㎒의 경우엔 월 7만3천2백원, 솔로 노트북(셀러론 3백㎒)은 월 8만4천9백원을 낸다. 또 유니텔은 3년간 월 5만6천8백10∼14만1천8백60원을 내면 삼성전자 PC를 받고 인터넷 및 PC통신을 3년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HDSL(Hyper Digital Subscriber Line)이라는 방식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스피드로의 프리 PC는 PC 값으로 1백원, 인터넷 이용료로 월 2만7천원만 내면 컴마을의 e-머신즈 PC를 제공받을 수 있다.(이용료 36개월치 선납) 약정 기간은 36개월. 또 프린터와 스캐너도 1년이나 2년 상품에 가입하면 받을 수 있다. 2년 약정 상품의 경우 HP 데스크젯 810C와 스캔젯 3300C 두 개를 묶어 역시 1백원에 받을 수 있다.

기존의 프리 PC와는 완전히 다른 가격을 내세운 스피드로의 이번 1백원짜리 프리 PC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경쟁을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국내 프리 PC 마케팅 논쟁에 새 불을 지피고 있다. 그동안 광고를 통해 사용해 왔던 프리 PC 마케팅은 PC 제조업체와 PC통신사, 금융사가 제휴해 사용자가 3∼4년간 매월 4만∼8만원만 내면 PC와 PC통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하지만 스피드로는 PC와 프린터, 스캐너의 가격을 무료나 마찬가지인 가격에 제공하고 월 2만7천원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프리 PC와 같은 프리 마케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다른 곳에서 수익을 얻겠다는 마케팅 기법. 가령 자신의 신상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 PC를 준다든지, 가입비 및 인터넷 사용료를 받지 않고 회원들을 모은 뒤 광고나 온라인 쇼핑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내는 것 등이 프리 마케팅의 대표적인 예다. 프리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고 이용자의 신상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다.

회원 DB가 쌓이면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고, 다른 업체와 제휴를 맺기에도 유리하다. 3백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글과컴퓨터에 1백억원에 전격 인수된 하늘사랑이나, 최근 주가가 급등한 새롬기술의 다이얼패드가 무료로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회원을 대거 확보해 광고를 유리한 조건으로 유치할 수 있게 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벤처캐피털의 투자 심사 때도 얼마나 많은 회원수를 갖고 있느냐가 해당 회사의 가치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인터넷 기업, 특히 전자상거래나 포털사이트의 보유 회원수는 그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열흘 만에 예약 가입자 2만명 돌파

IT분야에서도 프리 마케팅의 사례는 국내외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매월 20∼26달러 정도를 지불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하면 PC를 공짜로 주는 서비스 가입형과 월 10시간 이상 인터넷 광고를 봐주면 PC를 제공하는 인터넷 광고형이 있다.

또 웹사이트에 접속해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주식을 무료로 나눠 주거나 돈을 주는 개인정보 제공형과, 전화 광고를 들어주면 시내·외는 물론 국제전화까지 공짜로 걸 수 있는 전화광고형도 나왔다. PC를 제공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단계지만 미국에서는 이머신즈에 인수된 프리-PC사가 자기정보 제공, 매달 10시간 이상 PC 사용, 인터넷 광고 보기를 조건으로 컴팩 PC를 무료로 제공한다.

프리 마케팅은 선발업체를 따라잡는 방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95년 뒤늦게 인터넷시장에 참여하면서 익스플로러를 전격 무료화했다. 결국 90%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었던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를 따라잡아 상황을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소비자들이 국내의 프리 PC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은 그것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기 때문이다. 회원도 좋고 업체도 좋은 소위 윈-윈(Win-Win)적인 상품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이 우선 회원을 모집하고 보자는 식의 일종의 경품 행사처럼 여겨 국내 프리 PC 마케팅이 제 살 깎기식으로 돼 버렸다는 지적이 많다. 프리 PC가 3∼4년의 할부이자를 감안하면 일부 모델은 오히려 시중가보다 비싸다는 지적이 일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PC에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킨 요인. 일부 업체는 윈도98 운영체제를 제외한 일체의 소프트웨어를 장착하지 않아 워드프로세서, 통계프로그램 등 기본 소프트웨어를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 현재 국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데이콤, 한국통신 등이 사활을 걸고 회원 확보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나로통신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ADSL과 함께 삼성전자의 매직스테이션을 할부로 판매하고 있다. 매직스테이션 M4310-HTI2 표준형(셀러론 466㎒·15인치 모니터)과 매직스테이션 M5320-HTI2 고급형(펜티엄Ⅲ 500㎒·17인치 모니터) 두 가지로 구성된 PC플러스 ADSL 상품을 작년 11월부터 내놓고 있다. 하나로의 경우엔 보증 보험료, 임대장비 보험료, PC 실비 보험료 등으로 월 1만∼4만8천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이젠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꼭 PC를 구입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PC 구입 희망자는 물론 인터넷 사용료로 월 3만원 이상을 지불하는 모뎀 사용자까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PC가 결합된 프리 PC 상품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직 파격적인 프리 마케팅을 선언한 업체가 없었던 국내 상황에서 스피드로의 1백원짜리 프리 PC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지난 2월 8일 광고 이후 홈페이지와 콜센터, 전화국이 다운되는 사태까지 겪으면서 열흘 만에 예약 가입자가 2만명을 돌파한 것은 일단 성공적인 출발로 보인다.

함연호 PC WEEK 기자 / egoodbuy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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