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세대’ 등장 … 3S 정신 퍼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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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후 2시46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00일하고도 1주일이 지났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은 아직 수습 실마리를 못 찾는 ‘진행형’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의식·행동에는 벌써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지진이 사회통합 촉매제로 작용한다. 일부에선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에 나타난 변화의 폭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경제계의 움직임은 더 직접적이다. 생존을 위해 세계 최고의 제조공장이란 자부심을 떨치고 해외, 특히 한국과의 협력을 강력히 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의 300개 일본기업 모임인 서울재팬클럽 아와야 쓰토무(粟谷勉ㆍ59) 미쓰비시코리아 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부품협력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시했다.

사회 변화는 3S로 요약된다.
먼저 ‘진지함(seriousness)’을 존중하는 젊은이의 등장이다. 이름하여 ‘3·11세대’. 지난달 도쿄경제대학은 신입생 설문조사를 했다. “가치관과 삶이 변했다”는 응답이 70.1%였다. 이 대학 세키자와 히데히코(關澤英彦) 교수는 “얼마 전 학생들에게 애니메이션의 방향에 대해 물었더니 놀랍게도 거의 예상치 못했던 답이 왔다”고 했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은 평온한 일상을 혐오하고 극한으로 도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앞으론 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그런 비참함을 겪었기 때문이다. 앞으론 건설적인 인간상과 희망을 묘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 충실하고 사소한 것도 소중히 여기는 ‘진지함’이 퍼지고 있다.

둘째 키워드는 나눔(share), 혹은 공동사회 기여. 그동안 일본 젊은 층의 사고는 ‘개인주의’와 ‘고립화’였다. 1980~90년대 초 경제 성장의 과실을 챙기고 부의 유산만 남긴 기성 ‘단카이(團塊) 세대’에 대한 반발이었다. 사회에 벽을 쌓고 ‘나 몰라라’했다. 이게 변했다. 미야기(宮城)·이와테(岩手)현 등 재해 지역에는 자원봉사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학교마다 자원봉사 신청서가 쇄도했다. 도쿄공업대학 우에다 노리유키(上田紀行·문화인류학) 교수는 “3·11세대의 규범은 ‘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공존의 삶’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소셜미디어(social media)의 전면 등장이다. 이번 재해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했다. 유·무선 전화가 모두 불통됐던 당시 유일한 희망은 비록 간간이 터졌지만 ‘카카오톡’과 ‘트위터’였다. 소셜미디어는 정보 수집, 긴급 연락뿐 아니라 친지·가족 간 유대 강화에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3·11세대’와 3S의 등장이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현상이 속속 등장한다.

“지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준 남자친구에게 며칠 전 프러포즈했다.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줬다는 걸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24세 여성) “평범한 사람이라도 빨리 재혼하고 싶다. 나와 내 딸을 지켜 줄 수만 있다면….”(시즈오카현·38세 여성) 일본의 결혼 상담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이다. 대지진을 기점으로 결혼 희망 여성이 크게 늘었다. 결혼상담소 ‘노체센터’에 등록한 회원 수는 30% 늘었고 ‘오 네트’는 3~4월 결혼한 회원이 전년 동기보다 40% 증가했다. 소비 침체 속에 도쿄 다카시마야(高島屋) 백화점의 반지 매출만 40%가 뛰었다. 주오(中央)대 야마우치 마사히로(山內昌博·가족사회학) 교수는 “경제적 능력, 학력이 아니라 필요할 때 옆에 있고 의지할 수 있는 배우자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지털 부틱’에 따르면 부부싸움이 줄고 말도 한 적이 없던 인근 주민들과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늘었다.

장롱에 현금을 숨겨 두고 주머니를 안 열던 일본인들의 금전 감각도 바뀐다. 광고대행업체 덴쓰(電通)가 지난 21일 전국 1200명의 직장인에게 “올여름 보너스를 받으면 어디에 쓸 것인가”라고 묻자 1위는 ‘여행’, 3위는 ‘사치스러운 외식’을 꼽았다. ‘저축’ ‘디지털TV’가 휩쓸던 예년과 달랐다. 쓸 땐 쓰고, 필요하면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식 변화다. 일본외식업체협회에 따르면 대지진 후 가족 단위 외식 횟수와 단가가 모두 30% 늘었다.

의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소니의 한 간부는 “평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부하 직원들이 ‘이렇게 어려울 때 뭔가 나 스스로 해내야겠다’는 각오를 불끈 내비치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릿쿄(立敎)대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가야마 리카(香山リカ)는 이를 ‘자기 책임의 재인식’으로 해석한다. 믿었던 정부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을 본 일반 국민이 ‘믿을 건 나’라는 자각을 했고 이것이 수동적·부정적 자세에서 전향적·긍정적으로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김창우 기자 luckyman@joongang.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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