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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힘이 세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4호 35면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정보 중에는 가짜도 많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짓을 퍼뜨리기도 하고, 우리도 모르는 새 인지적 편파가 작용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행해진 어느 사회심리학 실험의 결과다. 신문 헤드라인이 “A후보, 마피아단과 연계” “B후보, 가짜 자선단체와 관련 있나?” “C후보, 은행 횡령과 무관” “D후보, 우리 시에 도착”이라고 돼 있는 4개 신문을 보게 한 뒤 각 후보자의 인상을 평가하게 했다. 마피아단과 연계됐다고 보도된 A후보는 당연히 중립적 메시지로 보도된 D후보보다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놀라운 사실은 가짜 자선단체와 관련 있는지 의문문으로 보도된 B후보 역시 A후보만큼이나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은행 횡령과 무관하다고 보도된 C후보 역시 A, B후보만큼은 아니지만 D후보보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런 연구 결과는 기사 제목만으로도 비리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각종 언론의 보도를 접할 때 특히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전단지 형태로 소문을 퍼뜨려도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 프랑스의 한 연구에서는 ‘어느 식품회사의 제품에 발암물질이 포함돼있으니 사지말라’고 주장하는 리플릿을 봤을 때 과연 몇%의 사람이 먼저 사실을 확인하려 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의사·교사조차 10% 정도만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고 응답했다. 오피니언 리더마저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다른 행동으로 옮기는 사례가 흔함을 보여 주는 결과다.

누군가를 음해하는 불법 전단지를 뿌렸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확인에 앞서 놀라고 분노하는 한편으로 전단지에 나온 ‘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흥미에서건 이해관계에서건 발 없는 말은 순식간에 천 리를 옮겨 간다. 사람들은 그만큼 사실 확인에 인색하고, 가짜 메시지에도 쉽게 무너진다.

비난의 효과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잘못한 사람이 역으로 상대를 비난하면 제3자는 비난받는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한다. 잘못한 사람의 허물은 희석되고 오히려 잘못하지 않은 채 비난받는 사람이 오해를 받는다. 누가 정말 잘못했는지를 판단해야 할 유권자의 입장에선 비난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비난하는 사람의 의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사실이 보인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네거티브 전략이 ‘수면자 효과’와 합쳐질 때다. 수면자 효과란 정보원의 신뢰도에 대한 기억이 흐려진 뒤 그가 퍼뜨린 내용만 머릿속에 남아 뒤늦게 태도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정보원이 상대 후보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릴 때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도 나중에 신빙성 없는 정보원으로부터 흘러나온 이야기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은 채 그 내용만 머릿속에 남아 뒤늦게 부정적인 인상이 강해질 수 있다.

가짜 정보를 가려내기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더욱 어려워졌다. 최초 출처가 불분명하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까지 급속히,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게 만드는 SNS는 양날의 칼과 같다. 물론 집단지성의 자정작용으로 언젠가 사실 확인이 되지만 그 경우에도 피해를 당한 쪽의 실추된 이미지는 쉽게 원상 복구되지 않는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써 여러 가지 정보와 소문이 떠돌아다닌다. 대개 네거티브 쪽이 더 많다. 유권자로선 악성 정보를 입수하면 그 출처와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유권자와 정보 소비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보의 진위, 최초 유포자의 의도 등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흑색선전이나 불순한 선거전략에 말려 판단이 흐려지지 않고 옥석을 구분할 수 있다.



나은영 서울대 학사·석사, 예일대 사회심리학 박사. 최근 쓴 저서 미디어 심리학이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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