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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이오, 이 방에서 집권 플랜 나와야 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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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호 12면

DJ는 햇볕정책 창시자지만 북한이 도발하자 강력히 비판했다. 10월 7일 청와대에서 안보영수회담이 열렸다. 대통령 YS가 차트를 짚어가며 공비 소탕을 위한 군 작전 상황을 설명했다. [중앙포토]

지난 호에 DJ가 나에게 조용히 일할 공간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했다. 그 하루 뒤 DJ가 다시 불렀다. 그러더니 “사무실 구하는 건 이군(이수동 비서)에게 시켰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난 1996년 9월 22일께다. 저녁에 일산 자택에서 보고를 하는데 DJ가 “내일 오후 2시에 그곳으로 와요”라고 말했다. “총재님, 그곳이 어딥니까?” 나는 어리둥절해 물었다. “아니, 이군이 얘기 안 해 주던가? 마포에 있는 강변 한신코아 1411호로 오라구.” 그러면서 미행당하지 않게 주변을 잘 살피면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 이야기<18>] ‘대권 아지트’ 강변 한신코아 1411호

한신코아 사무실은 13평짜리였다. 실평수는 9평 남짓에 불과한데 DJ의 서재가 있고, 안쪽으로 휴식용 침대가 놓인 간이방이 있고, 또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또 다른 작은 방이 있었다. DJ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실내를 돌아보더니 “비좁긴 하지만 이만하면 됐어요. 한강이 보이는 곳으로 얻었으면 좋았겠지만 거긴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 구석진 곳이 좋아요”라며 웃었다. 나는 도대체 왜 국민회의 당사와 아태재단, 그리고 일산과 동교동을 놔두고 이런 비좁은 곳에 비밀리에 사무실을 차리는지 알 수 없어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제야 DJ는 해야 할 일과 주의해야 할 일, 그리고 자신의 구상을 이야기했다. DJ가 말했다. “첫째, 이 방은 우리가 퇴실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 둘째, 장 동지와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셋째, 이 방에서 정권 교체의 전략과 집권 플랜의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장 동지, 우리 이번이 마지막이란 절박한 생각을 갖고 뛰자고. 실제로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뤄 좋은 나라를 만들고 위대한 역사를 엮어 가자구.”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비서에게 말하면서도 DJ는 절대로 대의명분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논리가 있어야 행동할 수 있는, DJ다운 태도였다. 내가 해야 할 임무도 전달받았다.

DJ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고 싶어했다. ▶진보·보수 모두의 지지를 받으려면 어떤 정책과 전략적 행보를 해야 하나 ▶JP(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대선 연합을 할 경우 잃을 것이 많은가, 얻을 것이 많은가 ▶가치와 이념 노선이 다른 두 정당이 대선연합을 하면 그 정당성을 국민회의 지자자들과 진보진영에 설명할 논리는 뭔가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과는 차이점이 뭔가. 그걸 연구하라는 것이었다.

DJ가 말했다. “학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토론을 통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는 걸 게을리하지 마세요. 또 청와대와 언론사 내부 사정을 잘 확인해 보고 대기업 기조실의 정세 분석 보고서도 빠짐없이 보라구. 시간이 나면 4대 강대국의 대사와 정치 담당 참사관들을 만나 향후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고 한국정치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동향 파악도 하고.”

DJ가 요구한 대로 다 하려면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번이 진짜 마지막 아닌가. 마포 사무실은 말 그대로 그걸 위한 비밀 아지트인 셈이었다. DJ도 흥분이 되는 듯 오후 2시에 와서 밤 11시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았다. 저녁은 내가 밖에 나가 물만두와 자장면을 사다가 함께 먹었다.

다음 날부터 DJ의 지시대로 대학교수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DJ 비서라고 하면 순순히 만나 줬다. 진보적인 학자만 접촉한 게 아니었다. 보수와 중도진영도 포함시켰고 호남과 영남, 중부권 등 지역도 골고루 안배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사상, 북한정치, 국제정치 전공자들을 만났고 사회학자들은 계급론과 계층론, 사회조사 방법론을 공부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경제학, 법학, 여성학, 심리학을 전공한 교수들도 접촉했다. 전체 합치면 한 50명쯤 됐다. 한데 모든 교수가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게 하나 있었다. 자기를 만났다는 걸 절대로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때 약속했기 때문에 이 지면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그 교수들 가운데는 그 후 노무현 정부는 물론 현재 이명박 정부와도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미 접촉했거나 앞으로 하게 될 교수들의 명단을 보고하자 DJ는 흡족해했다. “하버드·스탠퍼드·예일대 출신 교수들도 있어? 대한민국 일류학자들은 다 여기 모였구만. 그런데 장 동지는 이 사람들 만나면 무슨 얘기부터 하지?” “처음부터 정치 얘기는 안 하고요, 그분들이 쓴 책이나 논문에 대해 묻는 것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합니다. 총재님이 그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언제 자리 한번 만들겠다고 하면 다들 좋아합니다.” DJ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이 쟁쟁한 사람들이 날 도울 수 있어요?” “있습니다. 단 전면에 나서긴 쉽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비밀리에 도움을 받을 순 있습니다.” DJ는 좀 실망한 것 같았다. 만일 교수들로부터 공개적인 지지를 받으면 DJ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내가 교수들을 열심히 만나고 다니는 동안 DJ는 JP와의 공조에 박차를 가했다. 9월 12일 서울 노원구청장 재선거가 열렸는데 자민련의 김용채 후보가 당선됐다. 국민회의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다. DJ와 JP가 번갈아 지원유세를 했다. 승리 소식을 들은 JP가 말했다. “이번 노원구청장 선거의 승리는 80% 이상 국민회의의 공이다.” DJ가 화답했다. “김용채 후보의 당선은 우리 당 후보의 당선보다 기쁘다.” 하지만 국민회의와 자민련 내부에선 견제도 있었다.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은 “이번 공조의 의미를 내년 대선과 연계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회의와 DJ로부터 얻어 낼 게 많은데 너무 일찌감치 공조 분위기가 확산돼 버리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계산한 제동이었다. 국민회의에서는 김상현 지도위 의장이 대선 경선 출마의사를 밝혔다. 자민련과 공조하면서 DJ가 어물쩍 당의 대선 후보로 추대되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DJP 공조의 큰 흐름에 비하면 그 정도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진짜 태풍은 다른 곳에서 왔다. 북한의 김정일이었다. 9월 18일 새벽, 북한 잠수정이 강릉에서 좌초한 채 발견됐다. 잠수정 안에 타고 있던 무장공비 26명은 도주했다. 이 중 한 명은 곧 생포됐고 도주 능력이 떨어지는 잠수정 운항요원으로 보이는 11명은 내부 공작조에 의해 처형된 채 발견됐다. 그러나 특수훈련을 받은 15명은 산으로 도주했다. 이때부터 11월 5일까지 49일간 강원도 일대 여러 개의 국군 사단이 동원돼 공비 소탕작전이 실시됐다. 곳곳에서 교전이 벌어져 공비 13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군도 11명이 사망했다. 예비군 2명과 민간인 4명도 공비에게 희생됐다. 공비 2명은 끝내 북한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됐다. 게다가 10월 1일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한국영사관의 최덕근 영사가 피살됐다. 범인은 검거되지 않았지만 북한 소행이라는 정황이 짙었다. 10월 3일 YS(김영삼 대통령)가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무장공비를 내려보낸 북한은 적반하장으로 “잠수정에 탔던 승무원 시신과 생포자를 송환하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협박했다.

한참 잘나가던 DJ에겐 엄청난 악재였다. 혹시라도 ‘급진과격’이니 ‘빨갱이’니 하는 과거의 색깔론이 다시 부각될까 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DJ는 북한에 엄청 화가 났다. 몇 달 전에 치러진 4·11 총선에서 국민회의가 패배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서 박격포 군사훈련을 실시했기 때문이라는 게 DJ의 생각이었다.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걸 내건 마당에 이젠 북한이 무장공비까지 침투시키니 DJ로선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DJ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10월 3일 개천절에 ‘안보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동시에 당사에서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대북 결의문을 채택했다. “북한의 협박은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도발행위로 단호히 규탄한다”는 내용이었다. 10월 7일 오전, YS와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 DJ 국민회의 총재, JP 자민련 총재가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YS가 차트를 보여 줘 가며 안보 상황을 설명했다. DJ는 북한을 강력히 비판했다. “국가 안보에는 여야가 없이 협력하고 있다는 자세를 보여 줘야 한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어떤 도발이나 협박도 단호히 거부하고, 국가 안보 태세를 튼튼히 강화시켜 나가겠다는 결의를 명백히 해야 한다.” 그러면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국민 궐기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군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추경예산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말도 했다.

DJ는 10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야마시타 일본대사와 레이니 미국대사, 후나제 러시아대사를 연속으로 만나 북한을 비난했다. 중국을 뺀 이유는 13일부터 5박6일간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10월 8일 국회 정보위. 권영해 안기부장이 국민회의 간사인 천용택 의원에게 “북한 대남 위장방송인 민민전 방송에서 김 총재(DJ)의 신변 위협을 하고 있으니 중국 방문 때 조심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권 안기부장은 11일 국민회의 당사를 방문해 1시간30분 동안 안보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 뒤 DJ와 단독으로 만나 북한이 테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을 개방시키려던 DJ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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