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앞이 보이지 않으면 옆을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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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디지털 혁명의 속도가 가위 멀미 날 지경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워진 신기술은 다음날 눈을 뜨면 또 어디까지 가 있을지 모릅니다. 정보 혁명이라는 ‘제3의 물결’을 예언했던 앨빈 토플러도 이처럼 빨리 세상이 바뀔 줄은 생각 못했을 겁니다. 인류가 처음 돌을 쪼아 사용한 때부터 쇠를 제련해내기까지 거의 300만 년이 걸렸지만 이후 수소폭탄에 이르기까지는 불과 3000년이 걸렸을 뿐입니다. 디지털 혁명은 더합니다. 집채만 했던 컴퓨터가 손톱만 한 칩(연산처리 능력은 수천·수만 배 뛰어난)으로 줄어드는데 겨우 반세기가 지났을 따름이지요. 그야말로 번지점프 수준의 가속도입니다.

 이처럼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한복판에 우리가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금세 주변부로 튕겨나가 버린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속도가 빠를수록 가시범위가 줄어들지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속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기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잘난 사람들도 모르긴 마찬가집니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말할 것도 없고, 미래학자들의 예언 역시 틀리는 게 더 많습니다. 세계의 현자들이 모여 있다는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가 1974년 발표한 ‘세계식량보고서’는 “10년 후엔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게 됐나요?

 현장에서 뛰는 경영 구루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IBM의 토머스 왓슨 주니어 회장은 1941년에 “세계경제 규모는 컴퓨터 다섯 대 정도에서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한때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던 디지털이큅먼트코퍼레이션(DEC)의 창립자인 켄 올슨 회장도 “가정에서 컴퓨터가 필요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었지요. 그 유명한 빌 게이츠조차 1981년에 “640K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었습니다. 지금 그렇습니까?

 날고 긴다는 사람들도 이럴진대 범상한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 기업의 평균수명이 갈수록 짧아지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디지털 혁명의 가속도에 부응하는 수요 예측이 불가능한 때문이지요. 디지털 발전이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반대로 없애기도 하니까요.

 이런 디지털 회오리 속에서 나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요. 회오리가 심할수록 앞보다는 옆을 둘러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곧 나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란 말이지요.

 결점투성이인 아이폰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성능 면에서 아이폰은 최고가 아닙니다. 통화품질 면에서는 거의 바닥이라지요. 나 같으면 다른 걸 선택하겠는데 남들은 아이폰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겁니다. 반면에 휴대전화 세계 1위인 노키아는 어떻습니까?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노키아는 “우리가 만드는 게 시장의 표준”이라고 코웃음쳤습니다. 스마트폰 시대를 선도했던 블랙베리는 또 어떤가요? “e-메일과 문자는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노키아나 블랙베리나 “그건 네 생각일 뿐이고”였지요. 한마디로 남 생각을 안 했던 겁니다.

 반대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남 생각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출신이 아닙니다. 그저 소비자 입장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남들의 눈길을 끌고 남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요. 그 남 생각이 결국 그의 힘, 애플의 힘이 되었습니다.

 남 생각이 오늘에만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최한기는 저서 『인정(人政))』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이 생겼는데 남에게 묻지 않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만 행하면 인도(人道)는 이로부터 무너지리라.” 그가 살았던 시기도 조선을 강타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파고가 오늘날 디지털 혁명만큼이나 높을 때였습니다. 사물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난국 돌파를 모색했던 최한기였습니다.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 그런 그가 찾았던 길 역시 남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옆을 돌아보십시오. 남을 이해하려 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사소한 생각이 길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길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최한기는 이렇게 글을 마칩니다. “임금이 그러면 나라가 약해지고, 사대부가 그러면 집안을 잃게 되고, 일반 백성이 그러면 몸을 망치게 된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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