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동헌에선 지금 ‘공자왈 맹자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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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안에 자리잡은 동헌(東軒)은 120년의 긴 내력을 지녔다. 본래 판관(전주시장) 집무실이었지만,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으로 1934년 건물을 완주군 구이면의 한 문중에 팔아 버렸다. 이를 3년 전 전주시가 기증 받아 고증을 거쳐 복원해 올 4월 문을 열었다.

 이처럼 역사성이 풍부한 동헌에서는 요즘 매주 목요일이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대청 마루에서 20여 명이 함께하는 논어 강독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강독 모임은 11월까지 계속된다. 또 동헌 세미나실에서는 매달 셋째 목요일 전통사상 특강을 한다. ‘한국의 사상을 만나다’를 타이틀로 내걸고 진행하는 강의는 내로라 하는 유학자들이 화제로 대두한다. 지난달에는 김기현 전북대교수가 퇴계 이황의 삶과 철학을, 이달에는 최영진(성균관대)교수가 통합의 철학자 율곡 이이의 사상을 펼쳐 보였다.

 전주에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기관 등이 주도하는 문사철(文史哲) 강좌가 잇따라 개설돼 전통문화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인문학이 전주시민들을 홀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반응도 뜨겁다.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문화연구창은 2년째 ‘인문예창’이라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는 한옥마을 ‘자만재’에서 매주 화요일 열린다. ‘8가지 열쇠 말로 문화 읽기’란 주제 아래 6~7월에는 전라도의 말글과 국악밴드·소셜미디어 등을 소재로 얘기를 나눈다. 지난해에는 지방자치단체 현주소를 짚어보는 릴레이 포럼, 소리꾼·광대들의 면면을 찾아가는 판소리 명인명창열전도 진행했다.

 전주평생학습센터는 2009년부터 유쾌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씩 신화·사상·미술·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퇴근 시간 이후에 열리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수강생 중 60~70%는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마니아들이다.

 국립전주박물관도 이달 ‘인문학 여행 강의’시리즈를 시작한다. ‘인간과 건축, 한옥’을 시작으로 한식, 슬로시티, 문화의 원리 등에 대한 강의가 9월까지 이어진다.

 시민들의 참여 열기도 뜨겁다. 전주평생학습센터의 화요강좌에는 평균 80여 명, 많을 때는 100여 명이 참여한다. 한옥마을의 동헌에서 열리는 ‘한국의 사상’ 강의는 수강료(회당 1만원) 부담이 있는데도 자리(50석)보다 신청자가 많이 몰려 20~30명은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김수현 전주평생학습센터장은 “인문학 강좌는 시민들의 지적 자극과 문화예술의 생산적 담론 확산에 큰 도움이 된다”며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행사로 이어지면 1000년 전주의 문화적 토양을 더 기름지도록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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