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못하겠어, 안 할래, 힘들어 … 김자영이 해보지 않은 세가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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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지난겨울 여러 기업은 KLPGA 투어에서 1승도 하지 못한 한 선수에게 모자를 씌우고 싶다며 줄을 섰다. 주인공은 가녀린 외모에 실력을 겸비한 데뷔 2년차인 김자영(20·넵스)이었다. 장래성도 뛰어났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매우 고급스럽기 때문이다. 김자영은 지난해 준우승을 했고 올해는 9개 대회에서 톱10에 3차례 들었다. 상반기 마지막 대회였던 S-OIL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 golf&이 그를 만나봤다.

“골프선수 같지 않아 보이죠. 여려 보이는데 아주 당차게 볼을 쳐요. 팬카페 회원 모두가 (김)자영의 그런 모습에 반한 것 같아요.”

김자영이 제주 엘리시안 골프장의 클럽하우스에서 황금빛 조명을 배경으로 단아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하지만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살은 찌지 않는다”고 웃었다. [제주=스포티즌·JNA]


김자영은 전국 어디에 가도 팬카페 회원들이 꼭 따라붙는다. 특히 30대 ‘삼촌’ 팬이 많다.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KLPGA 필드요정 김자영2 팬후원회’ 소속 회원들이다. 1000여 명이나 된다. 지난 19일 제주 대회에서도 10여 명의 팬카페 회원이 김자영을 응원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팬카페 회원은 물론 서울에서 원정을 온 회원들도 합세했다. 삼촌 팬인 조광리(제주한라병원 흉부외과 과장)씨는 “평소 응원하던 김자영 선수가 지난해 벌에 쏘여 병원을 찾았기에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팬카페 회원이 됐다”고 했다.

1m65㎝의 늘씬한 김자영의 주가가 치솟은 것은 지난해 8월 넵스 마스터피스(4위)부터다. 그는 이 대회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해 하반기 10개 대회에서 톱10에 7차례 이름을 올렸다. TV 화면에 그가 자주 나오자 인기는 부쩍 올라갔다. 남자 투어에서도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김자영이 누구냐” “예쁘게 생겼는데 여동생 삼으면 좋겠다”는 등 큰 화제를 뿌렸다. 과거 필드의 미녀라고 알려진 선수들보다 한 수 위였다. 그는 김연아가 은반에서 그런 것처럼 필드의 요정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자영은 예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울 방배동에서 한의원을 하는 김자영의 아버지 김남순씨는 “누구한테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성격이 똑 부러진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희선씨는 ‘필드의 요정’이란 딸의 별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여자 아이들은 어렸을 때보면 뭐가 잘 안 된다 싶으면 징징댄다. 그런데 이 애는 그렇지 않았다. 참을성이 많다.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고 말했다. ‘못하겠어’ ‘안 할래’ ‘힘들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 김씨는 말한다.

어머니는 필드의 요정이 아니라 오히려 ‘필드의 뚜껑’이 더 어울린다고 했다. “경기를 하다 잘 풀리지 않으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흔한 말로 뚜껑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겉으로 드러내놓고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예쁜 딸을 너무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한의원 집 딸은 또래 아이들보다 힘이 세고 승부근성이 강했다. 그러나 물을 너무 무서워해 수영을 시켰다. 유치원(7세)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수영장에 다녔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운동신경이 좋아 전국소년체전에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는 “수영선수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열심히 하다 보니 자주 입상을 했고 서울시 대표로 발탁됐다”고 말했다. 수영 코치는 재능이 있다며 계속할 것을 권유했지만 4학년을 끝으로 수영을 그만뒀다. 김자영이 골프를 접한 것은 싱글 핸디캡 수준인 아버지 김남순씨를 따라 방배동의 한 연습장에 다니면서부터다. 1년 동안 연습장에 다녔지만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골프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골프를 시작한 지 1년6개월이 지난 후였다. 김자영은 “5학년 겨울방학 때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나 그곳에서 중학교 1학년에 재학하던 중 골프를 자주 접하게 됐다. 그런 시간이 많아지면서 골프를 하면 박세리 언니처럼 ‘세계에서 1등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내 결정에 대해 부모님이 허락하고 수용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어머니 김씨는 “자영이가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도 잘했어요.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부하기를 원했지요. 하지만 이 애의 승부근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도 부모 입장에서 잘 알고 있는 성격이었죠.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골프를 좋아하는 아빠가 딸의 운동신경을 눈여겨보고 은연중에 이쪽으로 유도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라고 했다. 김자영은 허락을 받고 나자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중학교 2학년을 앞둔 상황에서 골프선수의 길을 걷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는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 가기로 결심했다. 그곳에 있는 한 골프아카데미에 적을 두고 집중훈련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학습 진도는 매우 빠르게 나갔다.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그는 “중2 때는 5개 주니어 대회에 출전했고, 중3 때는 제주지사배에서 7위를 차지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각종 골프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했고 세미프로 테스트와 프로 테스트, 그리고 정규투어 출전의 시드전까지 일사천리로 단 한 방에 모든 관문을 뚫었다. 겉으로는 가냘퍼 보였지만 김자영은 강했다. 어머니 김씨는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였다. 돈으로 계산이 잘 안 된다”고 손을 저었다.

그는 늦게 시작했지만 스윙이 아주 간결하고 짜임새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삐뚤어지지 않는 스윙의 큰 원은 보는 사람에게 시원한 맛을 선사한다. 색상으로 치면 파란색이다. 실제로 김자영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도 파란색이다. 그는 “차가운 면도 있지만 안정감이 드는 색상이다. 이성적으로 냉정함을 잃지 않는 느낌도 들어서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첫 승이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그분이 가까이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요(웃음).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1라운드 때 정규 투어에서 가장 좋은 66타를 쳤거든요. 그때 정말 그분이 오시는 줄 알았어요.” 그렇다고 김자영은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하나의 샷에 하나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듯 우승도 그 과정을 밟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영에서 1초를 당기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골프는 수영처럼 짧지 않고 시간이 길게 흘러가는 롱게임이죠. 골프에선 여러 요소들이 하나로 뭉쳐져야 해요. 참 복합적인 운동이죠.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자영의 롤모델은 은퇴한 골프 여제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다. 그는 “오초아처럼 큰 무대에서 흔들림 없는 선수가 되고 싶고 골퍼로서,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또 “오초아처럼 사회에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닮고 싶다”고도 했다. 시합이 끝나면 반드시 스파게티를 먹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한다는 김자영은 “하반기에 꼭 우승으로 많은 팬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제주=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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