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L당 100원 인하 끝나가는데 … 정부 “천천히 되돌려라” 업계 “뭔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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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기름값을 놓고 정부와 정유업계 간에 또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석 달간의 기름값 ‘L당 100원’ 인하 조치가 끝나는 다음 달 7일을 목전에 두고서다. 시장에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정부가 “단계적으로 올리는 게 어떻겠느냐”며 속내를 먼저 꺼내 놓았다. 김정관 지식경제부 2차관은 지난 17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 참석, “7일부터 바로 인상되지 않고 가급적 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단계적으로 올릴 수 있게 정유사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L당 100원→70원→50원으로 인하폭을 줄이자는 얘기다.

 이 말을 놓고 업계가 술렁이자 정부는 ‘단계적 인상론’은 정유업계가 아니라 주유소업계를 두고 한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도경환 지경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기름값을 내릴 당시) 주유소가 비싸게 기름을 사뒀기 때문에 내릴 때 가격이 단계적으로 내려갔듯 오를 때도 마찬가지 논리로 천천히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말했다. 또 “정유사들이 손해를 좀 더 감수하고 단계적으로 올려주면 고맙지만 강제할 것은 아니다”며 한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정유업계의 기름값 인상 의지는 강하다. 일단 손해가 커서다. 업계는 석 달간의 인하 조치로 7000억~8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정유사들의 정유부문 매출액(수출 포함)은 약 88조5684억원으로, 이 중 영업이익은 1조9473억원이었다. 정유사가 석유제품 1L를 팔면 평균 14.1원의 이익을 남기는 구조다. 정유사의 입장에선 값을 내린 기름을 팔면 팔수록 손해였지만, 소비자들은 가격 내린 기름을 더 썼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하 전보다 평균 20% 이상 주문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기름값 인하 때문에 정유사들이 2분기 적자를 보게 됐다. 그만큼 했으면 충분히 한 것 아니냐”며 인상 의지를 피력했다.

 주유소 공급가를 낮춘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과 달리 카드 사후할인을 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카드회사와 계약이 끝나서”라며 인상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카드사와 다음 달 6일까지 할인혜택을 주는 걸로 계약해 기름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 SK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가격을 올린다면 카드사와 어떤 식으로 계약을 해야 하는 건가. 따라서 기름값을 원상복귀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겉으론 ‘원상복귀’를 외치고 있지만 업계의 눈치작전은 치열하다. 올 4월 가격을 내릴 때도 그랬다. SK이노베이션이 L당 100원씩 인하하겠다고 처음 발표하자 다른 3사도 줄줄이 SK의 방침을 따랐다. SK만 가격을 내릴 경우 소비자들이 다른 주유소에 등을 돌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편으로 갑자기 가격을 올릴 경우 주유소나 소비자가 기름 사재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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