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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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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그제부터 단출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찰스 버스턴이 남긴 Korea 1952’라는 명칭이다. 1층 한편 자그마한 공간에 소개글과 사진 15장, 컬러 동영상 모니터가 전부다. 자료를 기증한 미국 코네티컷대 명예교수 찰스 버스턴(83)은 치과 교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치의대 졸업 후 24세 때인 1952년 군의관으로 한국에 파견돼 1년여 근무했다. 6·25 당시 전시수도였던 부산 수영지구 K-9 비행장이었다. 사진촬영을 좋아했기에 부대 내 매점에서 카메라·필름을 구입해 틈날 때마다 찍어댔다. 비행장 안팎, 쌍다리 수영강 주변, 동래시장, 범어사 풍경이 렌즈를 드나들었다. 귀국 후 필름통에 넣어 고이 보관했다. 6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그의 제자인 박영철 전 연세대 치과대학장이 다리를 놓아 귀중한 자료들이 한국 땅을 밟게 됐다. 버스턴은 전시에 대해 “60년 전 영상을 한국인들이 관심 갖고 소개하는 것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기꺼워했다.

 ‘Korea 1952’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함께 발간한 버스턴의 사진집과 영상집(DVD)을 참조해야 더 맛이 난다.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전시 풍경 치고는 너무나 평화로운 데다 화면이 엊그제 찍은 것처럼 생생해 놀랐다”고 말했다. 내가 봐도 그랬다. 화면 속 사람들은 대체로 입성이 남루했으나 표정만은 밝았다. 여인들이 모래사장에 모여 장구 치며 야유회를 즐기는 사진도 있었다. 고추를 드러낸 어린아이가 우물가를 돌아다니는 동영상은 내게도 친숙한 과거 풍경이었다. 민속박물관 연구팀은 지난해 8월 자료 보강차 부산에 출장조사를 갔다가 버스턴의 동영상에 나오는 동래시장 ‘누들맨(국수 뽑는 청년)’을 60년 만에 찾아내는 성과도 거두었다. 20대였던 국수집 청년 김종줄씨는 암과 싸우는 84세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연구팀과 인터뷰한 직후인 10월, 끝내 고인이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전쟁 중에도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한다. 전시 수도 부산의 주민·피란민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때로 놀이를 즐기는 것은 정상적인 풍경이다. 사람의 본래 모습이다. 나는 어제 민속박물관의 ‘Korea 1952’ 전시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무언가 착각을 해오지 않았나 반성했다. 나도 모르게 ‘박제화된 6·25’의 이미지에 젖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선입견·이념이 앞서는 6·25관(觀) 말이다.

 어떤 역사적 사건도 이념과 정치적 현실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내일 61주년을 맞는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기억’은 생생함이 전 같지 않고, 그나마 직접 겪은 이들 다수는 노쇠한 상태다. 전쟁의 기억이 간접체험·사료 중심으로 옮겨가는 지점에서 ‘기억의 전쟁’이 새롭게 시작된다. 기억을 둘러싼 전쟁이다. 6·25에 관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지 통제하려는 전쟁이다. 좌·우, 진보·보수로 불리는 우리 사회의 기존 대립구조가 고스란히 투영되기 쉬운 싸움터다. 그나마 북한이나 중국보다 낫다는 게 위안이다. 북한은 남침이라는 엄연한 사실 자체마저 부인하고 있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관을 고수한다. 6·25 관련 자료를 한국 등 해외에 제공한 혐의로 체포됐던 홍콩 학자 쉬쩌룽(徐澤榮·57)은 4년 만인 어제야 겨우 석방됐다.

 나는 요즘 『마을로 간 한국전쟁』(박찬승), 『수복지역 주민들의 한국전쟁 경험』(김영미) 같은 미시사 계열 책·논문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생생해서다. 이념보다 팩트(fact)의 힘이 돋보여서다. 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6·25 담론을 풍부하게 일궈 주면 좋겠다. 이념은 거기에 맛들인 사람들이 계속 매달리게 내버려 두자. ‘6·25학(學)’을 풍부하게 만드는 진짜 힘은 이념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본다. 61년이나 지났는데도 6·25가 아직도 너무 뜨겁게 느껴져 하는 말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