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반값 등록금’보다 심각한 ‘반값 졸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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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공학과

반값 등록금 요구는 원칙 없는 대학교육 정책에서 비롯된 혼란이다. 지금의 상황은 수십여 년 동안 마치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조치로 병을 키워 중증환자를 만들어 놓고 당장 드러난 현상만을 임기응변적으로 치유하려는 것과 같다.

 한 세대 전인 1970년대 초 고등교육기관의 수가 168개교, 학생은 20만 명이었다. 2010년에는 411개교에 364만 명으로 무려 18배 이상 늘어났다. 대학의 증가는 실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정서에 편승해 앞을 내다보지 못한 ‘원칙 없는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과 수술 없이는 치유가 절대 불가능한 중증환자를 보고도 병명(病名) 진단조차 제대로 못하는 여야 정치인들을 지켜보는 국민들 마음은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교육이 오로지 대학으로만 집중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 2년 과정 단기대학을 4년 과정 대학교로 만들고, 학장을 총장으로 바꾼 것도 이런 사례다. 여야 합의로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학벌보다 실력이 인정받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정책이 아니다.

 이처럼 잘못된 정책이 쌓인 결과가 ‘반값 졸업장’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의 본질은 반값 졸업장에 있다. 넘쳐나는 대학생으로 ‘대학 졸업장=실업증’이 돼버렸다. 비싼 학비를 내고 받은 졸업장이 그 반값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됐다. 당연히 등록금이 비싸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록 지금 당장 반값 등록금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본질의 치유는 아니다. 단지 현상 치유에 불과한 미봉책일 뿐이다. 지금의 응급조치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학력 인플레로 야기된 총체적 문제를 백년대계의 틀에서 해결해야 한다.

 원칙 없는 정책으로 망가진 대학교, 단기대학 그리고 전문계고를 설립 취지대로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 있는 인재 육성 계획 수립과 각급 학교 졸업장의 가치를 인정하는 임금체계 개선이 시급하다.

 반값 등록금의 원칙 없는 해결은 자칫 ‘반의 반값의 대학 졸업장’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등록금 인하와 졸업장의 가치 하락이란 악순환은 더 큰 사회적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정치권은 더 이상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무책임한 대책을 내놓아선 안 된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건축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