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검찰은 단순한 수사기관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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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방희선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대립과 갈등이 막바지 타결로 수습의 가닥을 잡은 듯하다. 그러나 세부 후속 조치를 두고 양 기관의 이견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국민생활과 직결된 중대 사안인 만큼 이후 과정에도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한 기관 다툼 이상의 개혁과제로 오래전부터 논의가 계속돼 왔다. 지난 정권에서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본질과 근원을 살피지 않은 채 그저 기관 간 권한 다툼이나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단순한 비판은 궁극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근대 형사사법이 취하고 있는 ‘수사작용에 대한 사법통제’의 구조원리다. 모든 수사작용에 대해 ‘인권침해의 예방과 적법성 보장을 위해’ 반드시 사법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근대 법치국가의 형사사법체계다.

 따라서 아무런 통제장치 없는 독자적 수사권능을 바라는 듯한 일부 주장은 극히 위험한 발상의 오류임을 직시해야 한다. 소추(訴追) 전 단계의 사법권은 검사에게, 기소(起訴) 후 심판단계의 사법권은 판사에게 두는 방식으로 법전문가에게 사법적 통제의 임무를 부여한 것이 근대 형사절차의 구조원리이기 때문이다.

 영국·미국의 경우 경찰은 물론 치안판사와 변호인 등 법전문가에 의한 사법적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인권과 적법절차 보장을 위한 필수전제로 어떤 식이든 법전문가에 의한 심사통제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사법관인 검사에 의한 사법통제 원리를 ‘타(他) 기관의 간섭’인 듯 주장하는 것은 형사사법 구조원리를 부정하는 셈이다. 또 검사에 의한 사법통제 대신 다른 형태의 수사구조를 논하는 것은 현재의 소송구조를 바꾸는 또 다른 사안으로, 이번 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일부 경찰이 ‘수사권 독립’이니 ‘노예해방’ 운운함은 본질을 벗어난 잘못된 행태다.

 경찰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의 분화와 정비다. 사법경찰(수사관)과 행정보안경찰을 분리해 사법통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대다수 경찰공무원이 엉뚱한 논란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법경찰의 전문화와 독립성을 제고하고, 국정원과 세관 등 다른 기관에 산재한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통제원리도 일원화해야 한다.

 아울러 경찰에 우수한 인력을 보강하고 조직의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적법한 형사사법의 집행능력을 담보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최근 우수한 인력이 많이 영입된다고 하지만 수사현장의 소리를 들어보면 아직은 많이 미흡하다. 경찰은 최근 군(軍) 헌병대가 법무관을 수사지도관으로 받아들여 수사절차의 적법성을 담보케 하는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검찰 또한 맹목적인 수사권 경쟁보다 사법통제의 원리에 맞는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회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근대 형사사법 원리에 따르면 검사는 단순한 수사기관이 아니다. 수사에 대한 감독통제를 통해 적법절차와 인권보장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판사와 동격의 법률전문가인 사법관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원칙적으로 수사절차의 주재자로서, 그 사법적 통제와 감독 기능에 주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검찰은 관행적으로 광범한 수사에 직접 나섬으로써 마치 경찰과 경쟁관계인 수사기관이나 상급기관으로 오인돼 왔다. 검찰은 종래의 업무관행을 재검토해 본연의 임무를 중심으로 사법통제 작용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이같이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올바로 인식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특성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면 능히 조화로운 합리적 해결방안이 나올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성의 있는 노력으로 윈윈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길 바란다.

방희선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