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공사비…시공사가 뻥튀기 못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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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시 마포구 아현4구역 재개발조합이 2006년 3월 조합설립 동의를 받으면서 조합원에게 제시한 공사비는 3.3㎡당 239만원이었다. 이 금액은 2003년 3월 이 사업을 입찰받은 시공사가 제시한 액수였다. 하지만 2007년 9월 본계약 단계에 공사비는 3.3㎡ 당 396만5000원으로 뛰었다. 공사비가 66%나 오른 것이다.

건설사 측은 “설계를 변경하고 물가가 오르면서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조합 측은 이런 내용으로 본계약을 체결한 뒤 관리처분 총회에서 조합원 55%의 찬성으로 이를 추인했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은 “공사비의 대폭 증액 같은 중대한 사안은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년 뒤 공사비 증액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아현4구역은 재개발 절차를 다시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재개발·재건축 시공사가 일단 입찰을 받은 후 설계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공사비를 올릴 수 없게 된다. 서울시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공관리 시공자 선정 기준’을 개정해 23일 시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새 기준에 따르면 앞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반드시 ‘예정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예정가격이란 조합이 원가를 반영해 산출한 일종의 입찰가격 상한선이다. 사업에 참여하려는 시공사들은 예정가격 이하로 입찰 가격을 써내야 한다. 설계를 보완한다는 조건으로 예정가격 이상으로 입찰하면 자격이 박탈된다.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에도 조합이 정한 설계 원안을 다른 것으로 바꿀 때는 반드시 기존 설계보다 비용이 줄거나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 조합원에 무료로 제공하는 가전제품 같은 물품의 종류와 가격, 수량을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설계 원안에 없었던 가전제품을 설치하고 고급 마감재를 쓴다는 명목으로 공사비를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사업계획 변경에 따라 공사비를 증액하기 위해선 반드시 조합원들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일단 조합이 공사비를 올려준 뒤 나중에 조합원 총회를 열어 이를 추인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서울시는 개정된 기준을 고덕 주공2단지 재건축조합부터 적용키로 했다. 김승원 서울시 주택본부 공공관리과장은 “그동안 시공사들이 입찰을 할 때는 낮은 금액을 써내고 선정된 이후엔 다양한 명목으로 공사비를 올려 분쟁이 많았다”며 “새 기준 도입으로 부당한 공사비 인상이 억제되면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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