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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Shot]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난민 캠프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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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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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북부에 위치한 카보의 한 난민캠프. 6월의 불볕더위에 후텁지근한 습기가 더해져 한증막 같다.

캠프 안의 학교에서는 무더위를 잊은 채 프랑스어 수업이 한창이다. 시설은 비가 오면 천막을 치기 위한 나무 틀, 학생들이 나란히 앉는 긴 통나무와 칠판이 전부지만 아이들의 눈망울은 초롱초롱하다. 400여 명의 학생들이 이곳 ‘천장 없는 학교’에서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 학년별로 공부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최빈국 중 하나다.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436달러로 조사대상 183개국 중 174번째였다. 1960년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했지만 뒤이은 쿠데타와 내전으로 정치상황은 불안하다. 2005년부터 격화된 반군 활동과 함께 자국에서 쫓겨나 2009년 이 나라로 잠입한 우간다 반군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지난해 유엔난민기구(UNHCR)의 통계에 따르면 내전으로 고향을 떠난 국내 거주 난민이 19만7000여 명, 인근 국가인 차드와 카메룬 등에 머물고 있는 난민이 16만여 명에 이른다. 난민들은 허허벌판에 나뭇가지와 옥수수 줄기로 엮은 움막에서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산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오보의 한 난민캠프에서 시두안 나포완(여·10)을 만났다. 작은 얼굴에 큰 눈을 지닌 이 소녀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나포완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통고 통고’. 우간다 반군인 ‘신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을 일컫는 부족어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4명의 동생과 나포완이 엄마 손에 이끌려 캠프에 들어온 것도 1년 전 ‘통고 통고’의 습격으로 아버지가 사망한 뒤였다. 나포완 가족은 국제적십자위원회에서 지원하는 구호품과 땔감 등을 팔아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참상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주변의 수단·차드·콩고 등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에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아동구호단체 등 몇몇 국제원조단체만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2007년부터 수도인 방기에 대표단을 설치하고 각 지역에 산재한 난민캠프에 구호품을 지원하며 식수 공급을 위한 ‘우물 프로젝트’ 사업을 벌이고 있다.

 25일은 한국전쟁 61주년. 지난날 우리 부모 세대들은 전쟁의 와중에도 천막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대한민국의 번영은 역경을 이겨낸 선배 세대의 피와 땀에 빚을 지고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나포완과 그 친구들의 꿋꿋한 모습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60년 전 전 세계 최빈국으로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은 이제 원조를 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해외원조금액(ODA)은 11억6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잊혀진 나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는 3000만원가량의 구호품만이 전달됐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카보= 사진·글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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