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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민주주의’ 지평의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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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이 7·4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내놓은 민생·복지 대책이 화제다. 다른 후보와 확연히 구별되는 정책 대안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선 지난달 말 열린 『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미래』라는 책의 출판기념회(5월 2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다. 출판기념회 참석자 대부분이 보수 성향 인사들인 가운데 이부영 민주평화복지포럼 상임대표의 토론이 비록 ‘소수 발언’이었지만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비정규직 급증, 심각한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가 좌파만 걱정하는 현안이냐”고 따져 물었다. “직선제 실시, 진보-보수의 정권교체만으로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화’를 너무 표층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아울러 남북 문제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 점을 꼬집으며 “북한이 중국에 종속되는 문제를 방관한다면 민족사적 대실책이 될 것”이란 비판도 제기했다. 또 다른 토론자로 참석한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이부영 대표의 발언에 이어 ‘보수 민주주의’ 지평의 확대를 주문했다.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보수진영이 보다 과감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공동체의 안전과 지속을 위해 보수 우파가 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때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소급해 올라가면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에도 흥미롭게 제기된 바 있다. 2008년 초,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가 계간지 ‘철학과 현실’과 일간지 칼럼 등을 통해 제시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화난 사회’였다. 그는 우리 사회를 ‘헝그리(hungry·배고픈) 사회’가 아니라 ‘앵그리(angry·화난) 사회’라고 분석했다. 모두가 같이 배고플 땐 느끼지 못했던 사회적 고통에 눈을 돌려야할 때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단순히 ‘헝그리 단계’를 벗어나는 정도가 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보다 복잡한 ‘앵그리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앵그리 사회’가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강자(强者)·부자(富者)·식자(識者)에 대한 편가르기식 적대감이 확산된 탓도 있겠지만, 모든 사회갈등의 원인을 ‘진보 포퓰리즘’에 돌릴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잘살고 못사는 계층 간 양극화가 점점 크게 벌어지는 현실을 간과할 순 없으며, 결국 경제 살리기의 의미를 보다 확대해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지향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민주당이 주장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과감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정부·공기업의 비정규직 비율 의무감축,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 법인세·소득세 감세 중단,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장학제도의 확대, 학자금 대출이자 절반 감면 등도 언급했다. 학계나 시민단체의 토론회에서나 이야기되던 ‘보수 민주주의’ 지평의 확대가 실현될 것인가. 유 의원이 ‘친박(親朴) 인사’로 유일하게 대표 경선에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