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1등 하면 ○○ 사줄게? 어리석은 약속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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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서울 대치동에 사는 회사원 홍지일(52)씨. 지난 4월 말 고등학생 아들의 중간고사 전날 동네 이발소에 갔다가 “아빠 자격 미달”이란 말을 들었다. 유난히 손님이 없다 싶어 물었더니, 이발사가 “시험 때가 되면 학생들뿐 아니라 아빠들도 머리를 깎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홍씨는 “시험기간엔 음식점·스포츠센터 등이 한산해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머리까지 안 깎을 줄은 몰랐다”며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긴 하지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부모까지 ‘근신 모드’에 들어가는 시험기간. 이젠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중·고교에서 6월 말∼7월 초 학기말고사를 치른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부모의 행동요령은 뭘까.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나눠 학습 코칭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봤다.

이지영 기자
도움말=이미애 샤론 코칭&멘토링 연구소 대표, 고봉익 ㈜TMD교육그룹 대표(『공부습관 4가지 비밀』저자), 김명조 한국코치협회 인증 코치(부모코칭·학습코칭 전문)

이렇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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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표와 전략부터 아이의 능력과 현실에 맞는 목표를 세우는 시험 준비의 첫 단계다. 중간고사 때 60점 받은 아이에게 ‘90점 이상’이란 목표를 제시하면 아이는 의욕을 잃고 ‘해도 안 된다’는 자세가 된다. ‘70점’ ‘75점’ 등 도전해 볼 만한 목표를 세운다. 교재나 공부 양을 결정할 때도 과욕은 금물이다. 아이가 공부에 뜻이 없는 것 같다면 교재가 너무 어려운 건 아닌지 먼저 점검해 보라.

인생 자체에 대한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도 공부 자세를 결정한다.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려면 평소 대화 스케일을 키워야 한다. 시험 성적 하나하나에 목매지 말고 인생 전체를 크게 보자.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실제 시험 성적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목표를 세웠다면 전략을 짠다. 시험 3주 전, 2주 전, 1주 전 등으로 시기를 나눠 시기별 전략을 짜고, 어떤 과목에 집중할 것인지 과목별 중요도를 정하는 과정이다. 시간만 잡아먹을 과목은 과감히 버리는 ‘보류’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다. 시험공부는 교과서→학교에서 나눠준 프린트물→부교재→문제집→기출문제 풀이 순서로 한다.

2 때론 ‘쇼맨십’ 1분이라도 더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받기 바라는 마음…. 부모는 아이 앞에서 이런 속마음을 절대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된다. ‘옆집 아이’를 대하듯 최대한 체면을 차려라. 몸을 비비 꼬며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나무라 봐야 아이의 공부 의욕은 더 꺾인다. “간식 먹고 싶니?” “10분만 쉬었다 할까?”라며 기분 전환을 유도해 보자. 상태가 심각하다 싶으면 “공부가 재미 없니?”라며 최대한 감정은 배제한 채 진지하게 묻는다. 연극배우의 ‘쇼맨십’이 필요한 순간이다.

시험 결과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이가 뻔히 아는 문제를 실수로 틀렸다면 부모 입장에서 안타까움에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이때도 “속상하겠구나”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테니 앞으론 더 잘 볼 수 있을 거야” “힘내. 자신감 갖고 차분하게 다시 해보자” 등 다소 낯 간지럽고 교과서적인 대응이 효과적이다.

3 즉각 ‘피드백’ 시험 기간보다 시험이 끝난 뒤 부모의 역할은 훨씬 중요하다. 다음 시험을 위해서다. 목표 점수와 실제 점수를 비교해 성취도를 따져보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과목별 학습법과 공부 방해요소, 생활습관 등에 대한 점검이다. 어떤 문제에서 틀렸는지도 꼼꼼히 봐야 한다. 단순한 오답 풀이가 아니라 왜 틀렸는지 그 이유를 ‘개념 이해 부족’ ‘암기 부족’ ‘응용력 부족’ ‘실수’ 등으로 나눠 분석하라는 것이다. 이를 향후 공부 전략을 짜는 데 활용해야 ‘시험을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

이런 ‘피드백’과정은 각 과목 채점 결과가 나오는 대로 빨리 하는 게 좋다. 등수와 상관없는 실력 점검 과정인 만큼 성적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도 ‘피드백’은 필요하다. 계획대로 공부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다. 반성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분석과 대안 제시에 집중해야 한다. 초등학생이라면 매일 저녁 하루 공부를 되짚어보는 게 좋지만 중·고생은 1주일에 한 번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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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하지 마라

1 위협과 비난 “네 성적으론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못 간다.” “뭐가 되려고 그러니. 공부 못하면 거지밖에 할 거 없다.” 채찍이 약이 되리라 기대하며 시험기간 부모는 위협과 비난을 쏟아붓지만 아이에겐 독이 될 뿐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공부 의지가 더욱 약해진다.

아이들에겐 유혹거리가 많다. 컴퓨터 게임도 하고 싶고, TV도 보고 싶고, 잠도 자고 싶다.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공부를 한다는 건 자기 관리 능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관리 능력은 경험에서 얻어지는 능력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성인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꼭 해야 할 일부터 먼저 딱딱 해낸다면 그만큼 자존감이 높다는 의미다. ‘나는 가능성 있는 존재, 난 잘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키워줘야 공부도 잘하게 된다. “얘는 하면 되는데…”라는 말도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안 해서 나쁜 결과를 빚은 것’이란 비난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 너 애 많이 썼다”가 진정한 격려이고 위로다.

2 밀착 감시 시험 기간엔 배달 오토바이만 바쁘다는 말이 있다. 주부들이 아이들 공부 관리 감독하느라 밥 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애 공부하는 뒤에 바짝 붙어 앉아 감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아이가 공부의 주도권을 쥐고 학습시간과 휴식시간을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데, 그 기회를 뺏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사이의 신뢰관계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치하라는 것은 아니다. 눈치껏 아이의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 고1·중2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미연(43)씨는 “아이들 시험 기간마다 요리 솜씨가 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감시’하는 방법으로 요리를 택한 것이다. 메뉴는 만두나 두부과자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식탁 위에 재료를 한껏 벌려놓고 꼼꼼하게 오래오래 작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동태를 살핀다. 김씨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물이 마시고 싶어 등의 이유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요리에 몰두하고 있는 엄마를 의식해 한결 잦아든다”고 전했다.

3 포상 약속 “이번 시험에서 몇 등 안에 들면 뭐 사줄게”식의 포상 약속은 아이에게 “공부 못해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하려면 새로운 지식이 머리에 들어올 때 느끼는 기쁨의 정도, 즉 ‘공부 희열도’가 높아야 한다. 그런데 포상 약속 때문에 한낱 물건이나 이벤트 등을 목표 삼아 공부하게 되면 공부 자체의 기쁨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마치 단맛이 강한 사탕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밥맛의 진가를 못 느끼는 것과 같다. 만약 아이가 먼저 포상을 요구하는 경우라면 포상 조건으로 등수나 점수 대신 공부 과정에서의 만족도를 제시한다. “그래, 한 번 도전해 보자.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면 네 부탁을 들어줄게”라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언제나 결과보다는 과정이 평가의 초점이 되도록 한다. 시험 전날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아이디어다. 결과와 상관없이 시험기간에 수고했다는 의미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실컷 놀게 한다. 이 날만큼은 컴퓨터·TV 등을 시간 제한 없이 맘껏 사용하게 해 스트레스를 풀어주라. 함께 옷을 사러 가거나 뮤지컬·공연 등을 감상하는 것도 시험 끝난 날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시험 결과를 추궁하고 싶더라도 반드시 참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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