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부르는 게 아니라 다르게 부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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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31면

금언이나 좌우명을 이마에 달고 살지는 않는다. 유치하니까. 그래도 가슴을 치며 오래 담기는 한마디가 간혹 있다. 근년에도 그런 한마디, 아니 두 마디가 있다. ‘우리는 잘 안 될 거야’, ‘심지어 나쁘지도 않다’. 전자는 붕가붕가레코드사 대표 곰사장의 선언이고 후자는 소속 가수 장기하에 대해 내린 평가다. 내가 이해한 뉘앙스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학 안에 껄렁하게 노는 친구들끼리 모여 주먹구구로 밴드 만들고 방에 커튼 치고 레코딩해서 허접한 컴퓨터로 공시디에 구워내 헤어드라이어로 비닐 포장한 음반을 들고 카페 전전하며 팔거나 공연하는 ‘음악인’들의 ‘우리는 안 될 거야’ 하는 자조는 실감 난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 읽히는, 숨어있는 의미는 자존감이다. 예능기획사 쫓아다니며 오디션 보고 연습생 훈련 과정 거쳐 반짝반짝한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부류와는 급이 다르니까. 그러다 간혹 길에서 지갑을 줍는 듯한 일도 벌어진다. 평범하다 못해 ‘심지어 나쁘지도 않다’고 자기들끼리 평가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가 ‘테레비’에 나오는 대중가요가 된다. 붕가붕가 멤버들이라면 야호! 하이파이브 대신 진짜 붕가붕가를 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킬킬, 키득키득, 우헤헤.”

詩人의 음악 읽기 재즈 보컬리스트 애비 링컨

음악은 발견의 기쁨이다. 방송이나 전문잡지에서 인도하는 차트를 좇는 일은 라면을 먹으며 아파트에 사는 일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그걸 먹고 거기에 살지만 그게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숭미 숭유럽 사대주의자인 셈인데 가령 신인급 뮤지션으로 프리랜스 웨일스(Freelance Whales)의 음악을 들어보라. 지하철에서 연주하던 5인조 인디밴드로 첫째, 주류 음악의 흐름과는 무관한 자기네 멋대로식 음악이고 둘째, 저 초라하고 낡고 예스러운 악기들이라니! 그런 그들이 제법 떴다. 유튜브에서 공연을 즐겨 찾아보는데 집시풍과 브리티시 포크스타일이 결합된 미묘한 개성과 음악성을 보여준다. 무명인의 가능성과 독창성을 발견해 일반 팬들이 아끼고 키워주는 풍토가 미국·유럽 공연장에는 꽤 흔한 일 같다.

‘골든 레이디’ 음반의 첫인상은 황당함
인터넷으로 정보 전달이 쉬워진 탓에 발견의 재미가 좀 줄기는 했다. 그래도 LP 수집은 여전한 디스커버리 과정이다. 서울 회현동 지하상가 판가게마다 쌓여 있는 수십만 장의 LP들을 뒤질 때 뭘 다 알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다. 영감을 따라가며 느낌으로 팍 찍는 일이 태반인데 나중에 들어보면 기쁨 절반 낙망 절반이다. 1980년대 초반 애비 링컨(위 사진)의 신보 ‘golden lady’를 구입했을 때다. 모르는 가수였다. 표지에 어슴푸레 음영이 짙게 나온 얼굴은 영락없이 늙은 흑인 노예의 생김새였다. 집에 와 개봉을 하고 처음 들었을 때의 그 황당함이라니. 한마디로 너무나 못 부르는 노래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음반.

어떻게 이런 가수도 판을 낼 수 있나 싶었다. 우선 목소리가 나빴다. 가래가 끓는 듯 탁하고 꽉 막힌 발성인데 거기에 음정이 불안했다. 박자감도 자꾸 놓치는 듯 전반적으로 느린 템포가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돈 버렸다, 탄식하며 처박아야 했다. 그때 나는 어렸다. 서른 넘어서야 노래의 의미가 달리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독한 실연 뒤끝으로 자취방에 처박혀 밖으로 나올 엄두를 못 낼 때였다. 그 시절 노래는 가령 이래야만 했다. <갈색머리 흑인 여자의 서러운 이빨같이 서걱이는 한겨울 밤마다 살갗은 유리의 달에 부딪쳐 바스러지고 죽음보다 고적한 외투 속의 내 사랑은 두 주일이나 그냥 있는 젖빛 엽서 조금씩 미쳐가는 나는 무서운 취안(醉眼)인 채 황폐한 자갈밭을 건너…> (이가림의 빙하기)

조금씩 미쳐가며 황폐한 자갈밭을 건너가 만난 갈색머리 흑인 여자가 애비 링컨이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좋은 목청에 음정 박자 잘 맞추는 ‘위대한 탄생’ 따위가 아니었다. 영혼이랄까, 어긋남의 미학이랄까, 진흙탕에 몸을 굴릴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랄까, 결국은 잘 안 될 것이라는 생의 예감이랄까….

더 놀란 건 애비 링컨이 아주 유명한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스탄 게츠 등과 활동했고 맥스 로치의 아내였으며 인권운동에 앞장섰고 심지어 영화배우로도 활약이 컸다.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부르는 것. 인생의 슬픔과 굴곡을 그 자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저 탁한 목소리로 유명하다는 것은 이런 데 공명하고 알아보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리라.

어릴 때부터 나는 언제나 그랬다. 아마 잘 안 될 거야. 실제로 대부분 잘 안 됐다. 그런데 그것이 인생이란 걸 이제는 안다. 애비 링컨도 프리랜스 웨일스도 원래는 잘 안 될 건데 길 가다 지갑을 주운 것뿐이리라. 혹시 비틀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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