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랑드 천일염의 성공 비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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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34면

두 달 전 파리에서 서쪽으로 600㎞ 떨어진 게랑드 마을을 방문했다. 대서양 바닷가에 위치한 이 마을은 세계 최고의 소금으로 평가받는 ‘게랑드 천일염’을 생산한다. 게랑드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풍의 작은 마을이었다. 1400년 전부터 해안 주변의 갯벌과 늪지를 천일염전으로 개발해 약 900년 전에 오늘날의 염전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소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물질이었다. 그 덕에 게랑드 마을 역시 20세기 초만 해도 부유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정제염·재제염 등 대량 생산 방식이 확산되면서 염부 숫자는 100여 명으로 줄어들고 주민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게랑드 염전조합의 연 생산량은 1만t에 불과했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염전들을 다 합쳐야 1만5000t 정도였다. 전남 신안군의 작은 면(面) 단위 생산 수준이다. 하지만 게랑드 천일염은 kg당 3만7000원(꽃소금 기준)부터 7000원(굵은 소금 기준)까지 팔린다. 우리 천일염보다 수십 배나 비싸지만 유럽은 물론이고 북미·일본·중국까지 수출된다. 게랑드 염전의 성공 비결은 뭘까.

가장 큰 화두는 ‘친환경’이었다.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한 채 자연 그대로 소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선 소금을 밀고 긁어내는 대파 이외의 인공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갯벌 흙 그대로 바닥을 다지고 둑을 쌓고 자연 저수지를 통해 끌어들인 해수를 증발시켜 소금을 얻고 있었다. 문득 우리나라 염전들이 생각났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지만 석면 슬레이트 지붕의 창고와 해주들, 부직포 깔린 둑길들, 녹슬어 물든 쇠못 자국들, 베니어 합판 위에 화공 본드로 붙여 놓은 PVC 재질의 비닐장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2008년 2월까지 45년간 천일염을 식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광물질로 분류해 온 정책당국의 잘못도 한몫했다.

둘째 화두는 마케팅과 ‘식(食)문화’였다. 소금의 성분·품질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천일염이 게랑드 천일염보다 더 우수하다. 식품영양학적으로 볼 때 비만·고혈압의 원인이 되는 염화나트륨 함량은 7~8% 적은 반면, 몸에 이로운 미네랄인 칼륨·마그네슘 등의 함량은 3배가량 많다. 맛 또한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게랑드 천일염이 명품이 된 이유는 ‘친환경’을 강조한 마케팅과 프랑스 요리 문화의 영향력 때문이다. 프랑스 요리사들은 80년대부터 ‘친환경’을 강조하며 게랑드 소금을 쓰기 시작했다. 한식 세계화가 우리의 주요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이는 우리 천일염의 명품화와 세계화라는 목표에도 부합된다. 김치·젓갈·된장·간장·고추장. 우리 식문화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식품 모두 우리 천일염을 빼놓곤 만들 수 없어서다.

셋째는 바로 ‘사람’이었다. 황폐화된 게랑드 염전에선 1980년대부터 몇몇 사람이 친환경적이고 오랜 전통을 가진 게랑드 소금이 언젠가 각광받을 것이라는 신념 아래 염전조합을 결성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들의 꿈과 열정과 성실함이 세계 최고의 명품 소금을 낳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염업조합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 주도의 품질관리, 외국산 소금의 국산 둔갑 방지, 생산기술 전수, 생산비용 절감, 상품 다양화 등을 위한 염업조합의 혁신과 생산자조직의 강화가 절실하다.

마지막 화두는 청정 해역과 갯벌 보존이다. 게랑드 천일염은 70년대 휴양지 개발 논란과 99년 대서양 연안 유조선 침몰로 위기를 맞았다. 주민들은 휴양지 개발 이익보다 천일염을 선택했으며, 이중 댐 건설 등으로 기름 오염 문제를 극복했다. 리조트 개발 바람과 기름 유출사고로 몸살을 앓았던 우리나라도 게랑드 천일염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 볼 때다.



김학용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내무부 장관 비서관과 경기도의회 3선 의원을 거쳤다. 현재 안성포럼대표, 천일염세계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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