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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의 정보주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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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35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또 한 건 터뜨렸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선보이며 “세상이 또 달라진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어서 애플의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미국의 아마존·구글은 물론이고 국내의 인터넷 포털, 통신사들도 나름대로 하고 있는 서비스다. 그러나 이용자의 편리함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고 더 큰 시장을 공략해 온 애플이기에, 또 향후의 기술 발전과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에 클라우드 컴퓨팅의 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것이다. 당장은 고성능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갖춘 비싼 PC가 필요 없게 되거나 애플 제품 이용자만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전략일 수 있다. 삼성·LG 같은 경쟁 제조업체로서는 힘든 싸움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한 발 물러나 클라우드 컴퓨팅이 확산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자신의 문서나 파일 등을 외부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제공받게 한다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각자의 데이터를 서비스 제공자의 서버에 옮기는 것에서 시작한다. 애플이 이번에 발표한 ‘아이클라우드’ 구상도 아이튠스를 통해 한번 저장한 파일을 서버에 자동으로 통합 저장한 뒤 애플 제품을 통해서만 공유되게끔 한 것이다. 한마디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의 기본 조건은 자신의 것을 사업자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반면 정부 기관의 경우엔 외부 민간회사 서버에 데이터를 쉽게 내놓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재 추진되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는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 민간만을 대상으로 한 ‘반쪽 서비스’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는 점점 더 힘이 세지고 있다.

전 세계 이용자 개개인의 사진과 문서, 음악파일 등 거대한 데이터베이스(DB)가 어느 한 기업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은 프라이버시 차원 이상의 고민을 하게 만든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제대로 펼쳐지려면 기술적으로 수많은 서버가 통합적으로 유연하게 관리돼야 한다. 분산형 운영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음악이 아니라 이미지나 동영상 파일로 채워진 서버를 통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받게 된다면 친구를 사귀기 위해 올린 개인 사진이 상업적으로는 물론, 제 3자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거대 기업의 서버에 옮겨 놓았던 나에 관한 정보가 엉뚱한 것으로 바뀌거나 없어지면서 나를 찾는 악몽 같은 영화 속 장면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구글이 비록 얼굴 인식을 통한 이미지 검색기능을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의 확산은 결국 소수의 글로벌 기업 서버에 전 세계인의 취미나 사생활이 모두 저장되고 관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980년대부터 정보화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우리는 영토에 대한 국가의 주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흘러 다니는 정보를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보주권’의 중요성을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자국민의 모든 것이 담긴 데이터를 국가가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경우 국가의 기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용자를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네트워크를 통한 컴퓨터 기능을 공유하겠다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개인들이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더 큰 위험을 감수해선 안 된다. 한 발 더 나아가 국가는 마땅히 그런 위험이 커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감독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른바 ‘정보주권’의 시각이다. 정부는 전 세계 서버를 관리하면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의 통합적 정보관리 시스템에 대해 ‘정보주권’을 지킨다는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

물론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T) 기업 중심으로 정보 자원이 통합되고 관리되는 시장의 추세는 어느 한 나라가 나서서 규제한다고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 싸움에서 이긴 기업들이 앞다퉈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이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글로벌 IT 기업을 대한민국에서 더 많이 배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규제나 지원, 육성책 수준뿐만 아니라 관련 기업들의 전략적 동맹이나 인수합병(M&A)을 유도해 몸집을 불리고 시장을 활성화하는 큰 비전과 전략이 절실하다.



방석호 서울대 법대, 미국 듀크대 법대에서 공부했다. KBS 이사, 홍익대 법대 교수를 거쳐 방송·통신·IT를 연구하는 국책연구기관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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