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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받는 ‘反부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3호 35면

하지를 앞두고 더위가 서서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앞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올 것이다. 잠을 못 이루는 건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터진 공무원들의 부패 때문에 국민들은 답답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부패 문제를 연구한답시고 이런저런 처방을 말해왔던 필자도 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부정부패 때문에 조롱받는 공무원과 한 묶음으로 부패를 연구하는 필자도 조롱받을까 겁난다.

최근에는 국토해양부 공무원들이 산하기관과 민간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총리실 공직감찰반에 적발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접대를 받았다가 감시기관(watch-dog)에 발각되고 나서야 공무원들이 비용을 갹출해 갚았다고 해명한 것은 옹색하다 못해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타 부처에선 상비품처럼 갖춘 직원윤리규정인데,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규정을 챙기는 모습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감사원의 감사위원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고, 중앙 공무원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의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부패에 빠졌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은 ‘그래 너희들끼리 다 해먹어라’라는 반응을 보일 만도 하다. 낙하산 인사 와 법조계의 전관예우에서 오는 폐해도 권력의 끈이 없는 서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더 걱정인 것은 비리·의혹의 세상이 앞으로도 청산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관료들과 폴리페서들이 정치권에 줄 대기를 하고 있어서다. 고위 관료들은 대선 예비주자들에게 정책 정보를 은밀히 제공하고, 학자들은 여름캠프도 아닌 캠프조직에 숨어 전문가적 식견이라는 미명하에 그럴싸한(?) 정책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부패는 직접적인 대가성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정권에 줄을 대 벼락출세하거나 낙하산 인사로 재미보고, 정권이 바뀌고 나면 전관예우로 제2의 인생을 살 것을 기대하는 기회주의적인 행태 역시 부패의 분석 틀에서 조망돼야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한국의 관료 부패상황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개탄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민의 조롱을 받고 있는 공무원을 더 쥐어짜야 하나? 공무원들을 닦달할수록 이들은 복지부동할 게 뻔하다. 그럴 경우 행정의 효율성은 더 떨어지게 된다. 국민들은 더 고달파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와 화를 분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관료제에 대한 국민적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겪었거나 관찰된 비리와 부정에 관한 정보를 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검찰 등 부패감시기구에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처리, 부패규제 및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운영업무를 맡기는 대신, 초점이 흐려진 부패통제 업무를 전담할 새로운 기구의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인과 차기 권력에 도전하려는 사람은 비리척결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청사진이 구두선에 머물렀던 과거의 선례를 답습하는 고리는 반드시 끊어져야 한다. 부패척결을 실천하지 못할 경우 정치인 스스로 자신의 거취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또한 회전문 인사와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자잘한 뇌물의 폐해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정권 담당자는 깨달아야 한다. 은폐된 음습한 부패 상황을 햇볕에 드러내지 못한다면 부패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방법은 없다. 부패척결을 위한 개혁의 일상화가 필요한 이유다.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 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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