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국민’이 뿔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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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호 02면

운전을 하다 경찰차가 뒤에서 따라오면 괜히 맘이 편치 않다. 혹시 뭘 위반한 게 아닌가, 겁이 더럭 난다. 그러다 그냥 쓱 스쳐 지나가면 쑥스러워 피식 웃는다. 경찰만 겁나는 건 아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청 건물은 대부분 바둑판처럼 위압적으로 생겼다. 오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있는 검사와 수사관들도 건물을 닮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김종혁의 세상탐사

그렇게 힘센 두 기관이 요즘 충돌하고 있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권을 누가, 얼마나 가질 것인지를 놓고서다. 검찰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은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사들을 만나면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면 온갖 비리가 난무할 것”이라며 “경찰이 저질렀던 일들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경찰은 코웃음 친다. 과거에는 50대 경찰서장이 20대 검사에게 ‘영감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요새는 순경 지원도 수백 대 1이다. 검사보다는 떨어지겠지만 경찰관들의 자질과 실력도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부끄러운 과거라면 검찰이 결코 경찰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두 집단의 싸움은 점입가경이다.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사실태입법공청회’에는 경찰관 2000여 명이 몰려왔다. 500석 자리가 차자 나머지 1500명은 복도와 건물 밖에서 서성였다. 이들은 “상부 지시로 공청회에 나왔다”고 했다. 위력을 과시한 명백한 집단행동이다. 검사들도 다르지 않다. 17일에 대구지검 평검사 40여 명이 비상회의를 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석검사 24명과 부산·광주·창원·수원·인천지검 검사들도 모였다. 이 역시 사실상의 집단행동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해 준다. 대신 복종의 의무, 정치운동 금지의 의무, 집단행위 금지의 의무를 지운다. 이들의 행동이 공무원법 위반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위반이라고 한들 어쩌겠나. 그걸 단속할 주체도 이들이니 말이다.

검경의 싸움을 바라보는 ‘선량한 국민’의 마음이 편치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검경의 힘겨루기 대상, 다시 말해 수사권 행사 대상은 국민이다. 그런데 검찰과 경찰 누구도 제1의 이해 당사자인 국민은 아랑곳 않는다. “앞으로 무리한 수사와 인권침해를 줄이기 위해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밀어 주십시오.” 이렇게 국민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힘을 과시한다. 도대체 세금 내는 사람이 누군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주는 건 검경 다툼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 연수원에서 장·차관과 국장들을 모아놓고 혼을 냈다.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이 싸우는 것을 보니 한심하다. 검찰과 경찰이 법질서의 중심인데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들에 대해선 “나도 민간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비리는) 국토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데가 그랬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질타하고, 공기업도 비판했다. 대통령은 말하고, 장·차관들은 열심히 받아 적는, 익숙한 모습을 연출했다. 한데 궁금한 게 있다. 만일 대통령이 그런 문제점들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면 왜 일찌감치 고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하는 게 국민들에게 무슨 마음의 위안이라도 될까. 게다가 결국은 행정부 수반이자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은 모든 문제에서 초연한 존재고, 아랫사람들이 문제라는 식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게 과연 어떤 리더십인지 의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마 행정부를 질타해 열심히 일하게 만들려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로 말하는 게 정치다.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다면 말을 앞세울 필요 없이 책임질 사람들을 책임지게 하면 된다.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요즘 세상에 장관들이 머리 조아린다고 대통령의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런 모습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린다. 대한민국이 요즘 어렵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사회 같다. 그럴 때일수록 지도자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대통령은 과연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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