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이귀남·조현오 불러 중재했지만 … 수사권 합의 불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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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국무총리(왼쪽)가 17일 오전 국가정책조정회의가 끝난 뒤 이귀남 법무부 장관(가운데)과 조현오 경찰청장을 불러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양측은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총리실은 20일까지 최종 조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중앙포토]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안 마련에 나선 국무총리실이 제출시한인 17일에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국가정책조정회의가 끝난 뒤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조현오 경찰청장을 불러 합의를 시도했다. 김 총리는 이 자리에서 검찰과 경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196조1항에 대한 직권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 조항은 경찰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을 규정하고 있다. 김 총리가 낸 조정안은 ▶경찰의 수사 개시권 보장 ▶검찰의 수사 지휘권 보장 ▶모든 사건에 대한 검찰 송치 규정 ▶검찰에 대한 경찰의 복종의무 삭제 등이다. 이에 대해 이 장관과 조 청장은 “일단 알아듣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장관은 “검찰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할 입장이 못 된다. 합의라고 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총리실은 20일 오전까지 최종 조정안을 만들 방침이다. 하지만 타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검찰과 경찰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건 형사소송법 196조 1항과 경찰의 복종 의무규정을 담고 있는 검찰청법 53조다. 당초 검찰은 경찰이 현실적으로 수사 개시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명문화하자는 원칙에 동의했다. 그러나 사개특위에서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단순히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로 고치고 경찰의 수사 개시권 조항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검찰은 경찰에 제한 없는 수사 개시권을 줄 경우 경찰이 개시한 수사나 내사에 대해 검찰이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은 검사 수사지휘의 근거 조항으로 절대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조항을 고칠 경우 검사의 수사지휘 범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져 검찰과 경찰 간 갈등을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실질적으로 경찰이 수사 개시권을 갖고 있는 민생치안 사건을 넘어 제한 없는 수사 개시권을 부여하면 무분별한 내사나 과도한 입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공안·변사사건과 중요 공직자 비리사건 등은 현재와 같이 검찰이 수사지휘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청법 53조의 ‘복종’이라는 문구를 삭제하자는 사개특위 안에 대해서도 검찰은 삭제 대신 다른 표현으로의 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권 개시 명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정치권의 분위기 탓도 크다. 15일 사개특위 5인 회의에서 “이대로 가면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며 경찰의 표를 의식한 일부 의원의 발언이 나온 뒤 전국 주요 지검 평검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검찰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개특위안은 수사 현실을 반영한 것이고 미흡하지만 받아들이겠다는 게 경찰 입장”이라며 “검찰이 수사 지휘권 규정을 삭제하면 검찰의 권한이 걷잡을 수 없이 위축될 거라는 막연한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삭제하더라도 입건과 동시에 검사가 수사지휘를 할 수 있고, 내사종결 건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점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철재·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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